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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

수입차 “수억들여 드라마 내보냈는데, 말짱 꽝!”


드라마속 수입차들을 등장시킨 업체들이 저마다 나름대로의 고충을 겪고 있었다.

지난달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업체 관계자가 "큰 돈을 들여 수입차를 드라마에 등장 시켜도 효과는 미지수"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최근 수입차 업체들끼리 서로 경쟁이 붙어 차를 드라마에 등장시키는 비용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비용은 적어도 3천만원에서 많게는 2억원까지 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게다가 드라마 촬영기간 내내 언제든 촬영에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거나 촬영 팀에 장기적으로 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처음 수입차가 TV에 등장했을 때는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에서 임대료를 내고 차를 빌려서 촬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97년 방영한 ‘별은 내 가슴에’에 등장한 안재욱의 차 BMW Z3의 경우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성공을 거둔 사례로 손꼽힌다.

그러나 최근엔 드라마 제작이 대부분 외주 형태로 바뀌면서 영세한 외주업체가 수입차 업체들의 등골을 빼는 경우가 많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엄청나게 인기가 예상되는 드라마라서 다른 업체가 거액을 냈는데, 작가가 갑자기 반대하는 바람에 다음주 녹화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며 “당신의 회사에 기회가 생겼으니 차량을 모델별로 제공하고 1억원의 제작비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행운의 기회라고 생각한 이 회사 간부는 덜컥 드라마 협찬을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수입차 업체 사장은 외국인이어서 한국말을 잘 이해도 못하지만, 차가 언제 나올까 싶어 저녁마다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심히 봤다고 했다. 그러나 차가 자주 등장하지도 않은데다 시청률도 무척 저조해 심지어 드라마가 조기 종영되기까지 했다고.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등장한 차량인 ’로터스’의 경우도 남모를 아픔을 겪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드라마 주인공 중 한명인 이민호는 당시 운전면허가 없었는데, 드라마 출연을 위해 급히 운전면허를 취득한 상태였다. 그런 이민호가 로터스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개인적인 의사를 밝혀 제작진들이 로터스를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협찬 금액은 수천만원으로 일반적인 경우보다 비교적 저렴했다. 로터스공식 수입원 LK모터스는 이에 고무돼 판매 중인 차종 3대와 세계에서 1대뿐인 특수제작 모델을 내놓았다.

그러나 로터스는 자동변속기 모델이 없을 뿐 아니라 다루기도 쉽지 않은 차였다. 급격한 코너에서도 노면에 딱 달라 붙은 듯 안정적인 코너링을 보이고 한계점도 극단적으로 높은 순수 스포츠카지만, 일단 미끄러지고 나면 일반인들이 쉽게 바로 잡기 어려운 차이기도 한 것이다. ‘꽃보다 남자’ 촬영 당시 초보운전자 이민호는 영종도에서 운전 중 코너에서 중심을 잃고 코너 밖으로 벗어나는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로 세계 1대 뿐이어서 가격을 산정할 수 없던 로터스 한정판 모델은 대파돼 폐차에 이르게 됐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500만 관객을 돌파한 '대박' 영화 추격자에도 비화가 있다. 이 영화의 감독 나홍진은 주요한 영화적 장치로 재규어 XJ를 등장시켜야 한다고 고집했지만, 재규어 랜드로버코리아 측은 주인공의 직업이 포주라는 이유에서 비용 협찬은 물론 차량 제공도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감독은 고집스레 개인적으로 재규어 XJ를 빌려 촬영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내 판매 1위를 차지한 메르세데스-벤츠는 수년전 풀하우스에 2인승 스포츠카 SLK를 등장시키는 조건으로 협찬을 한 후 더 이상 드라마 협찬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요청은 지속적으로 들어오지만 영화나 드라마와 차량의 콘셉트가 맞아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포르쉐 공식수입원 슈투트가르트 스포츠카 관계자도 "뮤직비디오 촬영이나 영화 촬영을 위해 차를 잠시 내준 경우는 있어도 비용을 지불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드라마 PPL을 위한 비용이 경쟁적으로 증가하지만, 홍보 효과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드라마 촬영전 전 출연진과 대본 일부만 가지고 흥행을 미리 점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수입차 업체의 외국인 사장들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는 드라마에 수억원의 비용을 들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