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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1억원 이상

포르쉐 신형 911 터보 미리타보니 - (1)

"오브리가도! 오브리가도!"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렸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관광객들이 내가 세워놓은 포르쉐의 사진을 찍어도 좋겠냐고 묻는다. 마음대로 찍으라 하니 장난스레 포르투갈어로 고맙다고 외친다.
 
과거 유럽에 살았던 인간들은 분명 이곳이 땅의 끝이라 믿었을 것이다. 이곳은 유럽의 서쪽 끝인 포르투갈 까보다로까(Cabo da rocca;로카 곶)다. 정면으로는 대서양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깎아지른듯한 절벽 아래는 말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다.
 


포르쉐 911 터보 신모델을 타기 위해 멀리 이곳까지 18시간을 날아왔다. 포르쉐는 최고의 모델인 911을 출시할 때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는 장소를 선택하기 때문에 기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전 911터보의 시승때는 호주 대륙 북쪽끝(Top End)인 다윈(Darwin)까지 가야 했고, 때로는 스페인이나 독일, 오스트리아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곤함에 투덜거리다가도 매번 차를 시승해보면, 과연 고생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더 큰차가 좋은 스포츠카인가?
 
세계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더 큰 엔진, 더 큰 차체를 홍보하는 가운데, 포르쉐는 반대로 더 작은 엔진, 더 작은 차체를 자랑했다. 작은게 어째서 자랑거리라는 것일까.
 
이날 포르쉐는 최신 911터보를 선보이는 자리에 911 터보의 이전 모델들을 함께 전시했다. 사실 911터보의 초대모델(930)은 1974년에 시작됐다. 260마력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힘에도 불구, 0-100km/h까지 가속시간은 불과 5.4초였다. 5000cc엔진에 507마력을 내는 최신 BMW M5와 차이가 0.8초에 불과하다. 작고 경량화 된 차체 덕분이다.
 
일부 메이커들은 이제와 다운사이징을 얘기하지만, 사실 포르쉐의 경량화 철학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스포츠카는 강력한 엔진 못지 않게 덜어내는 실력이 중요한 것이다.
 
새로 등장한 신형 포르쉐 911 터보도 3800cc의 비교적 작은 엔진이지만, 단연코 수퍼카의 톱 리스트에 오른다. 이 납작하고 작은 엔진은 무려 500마력. 토크도 65kg·m를 내니 무시무시한 정도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메르세데스-벤츠 등에서 만드는 경쟁모델들은 적어도 8기통이나 12기통을 갖추고 배기량은 4699cc~6204cc로 최대 출력은 477마력~560마력이다. 토크는 가장 높은 것이 메르세데스-벤츠 CL 63 AMG 엔진으로 64.2kg·m에 달한다. 3.8리터 엔진이 6.2리터 엔진의 토크를 넘는다니 하극상이다.
 
신형 911터보는 시속 100km까지 가속력도 3.4초로 수퍼카 중 가장 빠른 수준이다. 4초 이내에 들어서는 차들도 흔치 않지만 3.4초라면 독보적이다. 최근 다운사이징을 표방한 페라리 이탈리아 458이 유일하게 경쟁할만한 수준이다.
 
 
신형 터보는 터보압이 낮아졌다?
 
기존 포르쉐 터보는 두가지 완전히 다른 소리를 냈다. "우우웅~" 하는 소리를 내는 구간과 "쿠아아악~" 하는 소리를 내는 구간이 명백히 나뉘어져 있었다. 가속중에 갑자기 "쿠아악~!" 하는 거친 소리가 나면 차는 급발진하듯 한발 더 튀어나갔고 운전자도 갑자기 머리가 쭈뼛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차를 몰아본 사람은 크게 두가지로 갈렸다. 지나치게 거칠어서 싫다는 운전자와 오히려 그래서 좋다는 운전자가 명백하게 갈렸다.
 
그러나 이번 신형 포르쉐는 터보압이 크게 낮아졌다. 이전 모델에 비해 무려 20%나 낮다. 배기량을 기존 3.6리터에서 3.8리터로 늘린것도 도움이 됐지만, 그보다 직분사 엔진을 채택했기 때문에 낮은 터보압으로도 충분한 동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최대 출력은 480마력에서 500마력으로, 토크는 62kg.m에서 65kg.m로 올랐다.
 
터보압이 낮아지자 차는 터보랙도 적고 터보의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어졌다. 꾸준한 형태의 가속이 되는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의 터보가 "뒤통수를 때리는 가속"이라 한다면 이번 신형 터보의 가속은 "뒤통수를 헤드레스트에 딱 붙여버리는 가속"이다.

이는 트랙을 달릴때 엄청난 장점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세계 최고의 트랙중 하나인 포르투갈 에스토릴(Estoril) 서킷에서 이틀간에 걸쳐 신형 911 터보를 꽤 자세히 살펴봤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달리고, 또 돌았다. 이날 서킷을 돌다 토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좀 달릴 줄 안다던 선배도 현기증이 난다며 운전대를 내게 맡기고 차에서 내렸다. 이에 대해 다음 글에서 다시 적어보겠다.
그리고 엔진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아래 몇줄은 그냥 넘어가도 좋겠다. 
 
신형 포르쉐 911 터보의 엔진은 터보압이 낮아진 대신 압축비가 높아졌다.
 
일반적인 가솔린 엔진은 흡기-압축-연소-배기 의 4행정을 갖고 있다. 이 압축을 얼마나 하느냐(보어:스트로크 비)는 것이 압축비다. 압축을 많이 시킬수록 폭발력은 강해지지만 압축은 공기의 온도를 높이게 된다. 때문에 지나친 압축을 하면 점화플러그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저절로 폭발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부적절한 타이밍에 폭발이 발생하면 이를 노킹 혹은 핑잉이라고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적절한 압축비의 밸런스를 잡는 것이 매우 어렵고 중요한 문제다.
 
터보 차량은 여기에다 터빈을 이용해 애초부터 압축된 혼합기를 실린더에 밀어넣는다. 당연히 온도가 더 오르기 때문에 엔진은 뜨겁게 압축된 혼합기가 들어오는 것을 감안해 압축비를 낮춰야 한다. 아니면 압축시 노킹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터보압이 높은 차량일수록 압축비가 낮고, 터보가 동작되기 전에는 더 큰 터보랙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직분사 방식이라면 일단 연료가 없는 빈 공기를 먼저 압축 시킨다. 여기에 여전히 차가운 연료를 스프레이 뿌리듯 실린더내로 뿌려 연소한다. 당연히 노킹의 우려가 적고 이로 인해 압축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