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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기아 K7

기아 K7…자동차에도 '꿀벅지' 있다고?

"엥? 꿀벅지가 뭐야!"

지난달 인터넷 뉴스를 통해 '꿀벅지'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는 저런 망측한 말이 다 있나 했습니다. 여성의 허벅지를 기사에서 언급하는 것도 해괴했지만, 여성의 몸을 먹기 달콤한 꿀에 비교하는 고약한 취향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된 유모씨가 '리얼'을 표방하는 모 SBS 방송프로그램에 나온 후 생각을 고쳐먹게 됐습니다. 다른 여자 연예인이 화면 밖에서 쭈뼛대고 있는 동안 그녀는 어떤 종류의 게임을 해도 1~2등을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보통 잘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어지간한 게임은 우락부락한 남자까지 그대로 제쳐버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빨리 달리고, 강하고, 이기겠다는 집념이 강해 보였습니다. 그녀를 보고 나니 그녀의 허벅지를 꿀벅지라고 은유한 이유도 달콤함을 차용한게 아니라 매끈하고 탄탄한데다 건강에 도움을 줄 것 같은 이미지를 차용한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알고보니 그녀는 체고에서 수영선수로 자랐다고 했습니다. 워낙 강한 기본기로 몸을 탄탄하게 만들어 균형잡힌 건강미에 시청자들이 반할만한 것 같았습니다.

 
기아 K7이 '꿀벅지' 갖고 있다고?
 
기아 K7을 처음 타고 느낀 점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민망한 표현이지만, 말하자면 '꿀벅지'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K7은 하체(서스펜션)가 단단하게 받쳐주면서 누구와 어떤 분야에서 경쟁해도 지지 않고 이길수 있겠다는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차를 처음 만난 것은 6시쯤 된 시간이었습니다. 주머니에 키를 넣은 채 차에 가까이 가니 사이드 미러가 저절로 펼쳐지고 도어 손잡이에 불이 들어옵니다. 헤드램프 주변으로 'ㄷ' 모양의 미등이 들어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고급스러운데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습니다. 가만보니 외관에서부터 매끈한 외모를 자랑합니다. 길게 뻗은 보닛라인이 공기저항을 줄이며 절묘하게 누워있는 윈드실드(앞유리)와 이어집니다. 워낙 매끄러워 찾기 어렵지만 곳곳에 숨겨진 근육질 덕에 건강미도 상당합니다.

실내에 들어가 엔진 시동을 걸어보니 계기반 바늘에 먼저 불이 들어오면서 "우르릉" 하는 소리가 납니다. 숫자판에는 불이 천천히 밝아지는게 멋집니다. 야성적인 시동 소리는 이 차가 퍼포먼스 세단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 합니다. 경쟁 모델은 경우에 따라 4리터 넘는 우락부락한 엔진으로 덤비는 상황이지만, 이 차는 3.5리터 V6엔진을 최적화 해 290마력을 낸다고 합니다.

가속패달을 밟아보니 튀어나가는 느낌이 매끄럽습니다. 이 전에 탔던 프로토타입 차량은 "크르르르"하는 소리를 내면서 가속이 됐는데, 이 차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빠르게 가속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더 나는 차가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가속패달을 힘껏 밟아 가속하면 봉인이 해지되며 공들여 가다듬은 배기음이 솟아납니다. 이전 차들과 달리 듣기 좋게 가다듬은 솜씨가 상당합니다. 

변속기는 6단으로 도움닫기를 합니다. 가속력이 여기까지인가 싶을때 변속을 하면서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가속하는 모습을 5차례나 볼 수 있습니다.  변속하는 느낌도 매우 매끄럽습니다. 다만 감속시 높은 기어로 자동변속돼 엔진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변속기에 스포츠모드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코너를 달려봤습니다. 서스펜션은 평상시 탄탄하면서도 부드럽지만, 전자제어 가변 서스펜션(ECS)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딱딱하게 변했습니다. 전륜구동 차량인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밸런스가 좋아 언더스티어를 느끼기 어렵고 뉴트럴에 매우 가깝게 움직입니다. 어렵게 언더스티어를 유발시켜도, 스스로 전자자세제어장치(EPS)를 작동시키며 차체 방향을 다시 돌려놓습니다. 어떻게 국내 서스펜션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최근 TV에서 본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 떠오릅니다. 매끄럽게 얼음을 지치지만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파고 돌듯 결코 미끄러지거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겁니다. 경쟁자를 압도하는 스피드로 진입하고, 강력하고 날렵한 동작을 보여주는 점이나, 잘 뛰고 잘 돌고, 잘 선다는 점, 게다가 아름답다는 점도 비슷한 부분입니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점은 장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고,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전자장비 총출동

겨울인데 핸들 열선으로 핸들을 따뜻하게 만드니 참 기분이 묘합니다. 한국땅에선 필수적이지 않지만 감성적으로 참 편안해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뒷좌석 전동 블라인드도 꽤 부자가 된 듯한 효과를 내주는 아이템입니다. 변속기를 후진으로 옮기니 블라인드가 저절로 쭉 접혀집니다.


이 정도 차에 주차용 카메라는 당연하지만 이 차는 그냥 후방카메라가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핸들을 돌리는데 맞춰 진행경로를 표시해주는 '주차 가이드' 기능이 들어있고, 직각방향인지 일렬주차인지 화면을 통해 선택하면 그에 맞는 가이드를 표시해줍니다. 뒷부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톱 뷰' 기능도 있습니다. 어지간한 주차공간에 주차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을 듯 합니다. 심지어 전방 카메라도 있습니다. 주차용은 아니지만, 골목에서 나갈 때 사용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만 에쿠스에 장착된 것과 같은 1렌즈 타입이라서 측면까지의 거리를 인식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밤에 차를 몰고 나가는데, 차들이 뒤에서 헤드램프를 비춰댑니다. 윈도우 틴팅도 돼 있지 않아 눈이 부실까 싶었는데, 측면 사이드미러가 저절로 어두워져 그럴일이 없었습니다. 룸미러에 자동 어두워짐(Auto Dim) 장치가 달린 국산차들은 많았지만, 사이드미러에 이 장치가 장착된 국산차는 처음 봅니다. 사이드미러에는 열선도 내장됐고, 가장자리는 약간 더 넓은 곳을 비추도록 하는 등 첨단 장치입니다. 후진할때는 저절로 낮은곳을 비춰주기 때문에 연석을 긁거나 하는 일도 훨씬 줄어들것 같습니다.

한참 주행을 하려는데 스피커에서 삑삑 소리가 납니다. 경고음을 내주는 장치(LDWS)도 장착됐습니다. 깜박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옮기면 졸고 있는 것으로 인식해 스피커를 통해 경고음을 내주는 장치입니다. BMW 7시리즈 등은 차선을 이탈하면 핸들이 진동해 운전자에게만 은밀하고 효과적으로 알리도록 만들어졌는데, 그런걸 좀 배워야겠습니다.

오디오를 테스트해보려다 깜짝 놀랐습니다. 촬영을 위해 스피커에 붙인 종이가 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스피커 출력도 온 몸이 떨릴 정도로 대단하고 섬세함도 상당합니다. 우아한 음악이나 헤비메탈 등 어떠한 장르를 펼쳐도 손색이 없습니다. MP3 CD를 넣으면 자동으로 차량내 하드디스크로 음악을 카피해 집어넣습니다. 오디오는 JBL제 입니다. 제네시스에 장착됐다는 수백만원짜리 렉시콘보다 음질이 좋게 느껴졌습니다. 13개 스피커가 내장됐다고 하는데, 다른 차에서 오디오 튜닝으로 이 정도 사운드를 내려면 수백만원이상 비용이 들기 때문에 반드시 선택했으면 하는 장비입니다.

내비게이션은 TPEG도 지원하고, DMB도 잘 나옵니다. 맵의 원도(原圖)는 지니맵을 만드는 엠앤소프트에서 납품 받지만 소프트웨어는 현대제 입니다. 많이 좋아져서 이제 어지간한 수입차 내비게이션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국산차의 장점을 누릴 수 있는거죠.


이 차는 … 다시 태어난 '기아차'다

이 차 보닛과 트렁크에는 기아 뱃지가 붙어 있습니다. 기아 내부적으로는 이 뱃지를 붙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합니다. 최고급차의 이미지에 기아 브랜드가 어울리는가 라는 의문이었겠지요. 과거 큰 아픔을 겪었던 브랜드이니만큼 숨기는게 판매 신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차는 기아 이름을 붙이고 고급차로 자리매김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합니다.

옳은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패밀리룩의 잇점은 고급차를 하위 모델과 유사한 이미지로 하향 조정하는게 아니라 고급모델이 이미지를 끌고 가면 저렴한 차들을 좀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BMW에 M3가 있으니 3시리즈가 팔리는 것이고,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있으니 C클래스를 그렇게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이겠죠. K7 덕분에 기아차의 다른 모든 차들의 이미지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전륜구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싫어했다고 하는게 맞겠죠. K7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이유는 전륜구동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K7은 민감한 사람도 전륜구동이라는 점을 쉽게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휘청거리는 렉서스 ES350보다 월등하고, 폭스바겐 CC 등이 내놓는 탄탄한 주행감각에까지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저 또한 전륜구동을 고려 해볼만 합니다.

사실 날렵한 디자인에 걸맞지 않게 어처구니 없는 출력을 가진차, 말하자면 순전 화장빨로 손님의 환심을 사보려는 싸구려 잡부가 국산차 중엔 많습니다. 하지만 K7의 경우 강력한 성능을 토대로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매끈한 외모까지 갖췄습니다. 건강미가 넘쳐 호감이 간다는 겁니다.

기아차의 전성기에 나왔던 프라이드, 콩코드, 세피아, 크레도스 등은  최근까지도 거리를 달릴 정도로 잔고장이 없고 튼튼한 차의 대명사였죠. 소비자들도 기아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경영난으로 현대차에 피 인수된 후 '형님'보다 좋은 차를 만들 수 없었던 암울한 시기가 있었고 소비자들을 실망시켰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K7으로 인해 그동안의 아픔을 단숨에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서히 변해온 기아의 이미지가 180도 바뀌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