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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2000~5000만원

GM대우 알페온 시승해보니…육중함에 반할 사람 있나요?

31일 제주에서 GM대우가 내놓은 알페온을 시승했다.

차체의 겉모습에서 풍기는 첫 느낌은 단연 '육중함'이다. 전장(차체길이)은 경쟁모델 기아 K7이나 현대 그랜저는 물론 상급모델인 현대 제네시스보다도 더 길다. 전폭도 K7과 그랜저에 비해 10mm더 넓다. 때문에 GM대우 측은 이 차를 '제네시스급이면서 가격을 낮춘 차'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경쟁모델에 비해 겉은 더 크지만 실내는 더 좁다.

외형에 비해 실내가 약간 좁다는 느낌이 드는데, 수치상으로 실내 공간 길이에 가장 중요한 축거(앞뒤 바퀴 축간 거리)가 K7보다 조금 짧고 제네시스에 비해서는 100mm 가량 짧다. 실내폭을 좌우하는 윤거는 K7에 비해 30mm가량 좁다. 겉모양은 크지만 실내공간은 모든면에서 제네시스나 K7보다 좁다. 현행 그랜저보다는 약간 크지만 그랜저는 4개월 안에 신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요즘 디자인 추세는 경쟁적으로 차체(전고)와 시트포지션을 낮춰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조하지만 알페온은 오히려 높이를 높였다. 전고는 1510mm로 K7보다 35mm나 높다. 껑충하다고 생각하는 측도 있겠으나, 반대로 존재감이 확실하고 시야가 탁 트였다고 생각하는 이도 만만치 않을 듯 하다.

보닛위의 공기구멍 모양 장식이 인상적이다. 크롬을 활용한 과장된 그릴의 모양도 이 차의 목표를 분명하게 하는 듯 하다. 요즘 국내 차종이 커다란 덩치를 숨기고 작아보이게 만드는데 치중한 반면, 이 차는 실제보다 더 커 보이도록 하는 전형적인 미국의 차 만들기 스타일이다.



좋은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하지만

이 차는 3.0리터 엔진을 장착했지만, 경쟁차들은 2.7과 3.3리터급 엔진을 장착하기 때문에 직접 비교가 쉽지 않다.

3.0리터인데도 불구하고 엔진 출력이 263마력으로 그랜저3.3(259마력), 제네시스3.3(262마력)에 비해 우수하다. 하지만 최대출력이 나오는 RPM(엔진회전수)이 6900RPM으로 높아 실용 가능성이 적다. 그랜저나 제네시스의 경우 최대 출력이 6200에서 나온다. 알페온의 토크도 3.3리터 엔진들과 비교하면 약간 뒤지지만 배기량을 감안하면 결코 부족한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급가속을 해도 튀어나간다는 느낌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의 꾸준한 가속이 이뤄지는 편이다. 변속기가 출발 가속을 편안하게 세팅됐기 때문이다. 차체 무게도 K7에 비해선 165kg이나 무겁다. 혼자 운전했지만 보이지 않는 여성 3명이 가득 타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날렵한 움직임 보다는 부드럽고 묵직하다. 최고속도는 시속 160km까지 쉽게 올릴 수 있었고 이후는 가속력이 둔해진다.

고속에선 엔진소음은 꽤 증가하지만 풍절음이나 노면소음은 좀체 커지지 않고 정숙성을 유지하는 편이다. 특히 중저속에서 정숙하고 진동이 적다는 점은 이 차의 큰 장점이다.

고속으로 코너링을 하면 중심이 약간 높고 차체가 무거워 휘청거리는 느낌이 든다. 반면 과속방지턱을 넘을때는 무거운 차체에 부드러운 서스펜션 덕을 본다. 꽤 빠른 속도로 과속방지턱을 넘어도 차체는 꿈쩍 않고 서스펜션 아래부분만 살짝 움직일 뿐이다. 노면 잔충격을 거의 막아주는 것은 물론이다. 스포티한 핸들링 보다는 장거리 크루징에 초점을 맞춘 듯 하다.


마치며 - 한국인들은 어떤 나라 차를 좋아할까

전형적인 독일 사람들은 수동변속기 차량을 몰고, 빠르게 가속하고, 급브레이크를 밟고, 급코너링을 하는 등 스포츠드라이빙을 즐기는 습성이 있다. 무엇보다 시속 200km로 아우토반을 잘 달릴 수 있는 차를 선호하고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오는 차가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포르쉐다.

프랑스와 영국 사람들은 좁은 길을 날렵하게 통과할 수 있는 차를 선호한다. 길도 매끄럽지 않아서 울퉁불퉁한 도로를 마구 달려도 노면 충격이 지나치게 올라오면 안된다. 그래서 나오는 차가 푸조, 시트로엥, 재규어, 랜드로버다.

미국 사람들은 긴 거리를 유유히 시속 100km로 달려야 한다. 차 안에서 햄버거도 먹어야 하고, 음료수도 마셔야 한다. 음료수가 쏟아질 정도의 흔들림은 좀체 없다. 독일의 컵홀더는 캔을 움켜쥐는 모양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차의 컵홀더는 그냥 세워두도록 만들어진걸 보면 각국의 차를 다루는 방식을 알만하다.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이런 차들이다.

반면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 내놓을만한 '차 다운 차'를 만들기 시작한건 근래 들어서다. 그러다보니 아직 취향을 정립하지 못했고, 선진국 따라잡기가 계속되는 듯 하다.

기아 K7, K5는 전형적인 독일차 스타일이다. 외관의 실루엣이나 실내 디자인이 그렇다. 하지만 서스펜션 등 조작감의 세팅은 일본차를 떠올리게 한다.(따라 잡았다는게 결코 아니다) 

반면 알페온은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차다. 과장된 외관에서나 실내, 서스펜션 세팅 등이 모두 그렇다. 

자동차 선진국들은 각자의 국민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차를 만들어왔고, 그게 각 나라별 자동차의 특성이 됐다. 어떤 차가 더 우수하다고 할수는 없다. 독일차가 비교적 비싸게 팔리긴 하지만 장거리 주행에서 미국차처럼 부드럽고 넉넉하지 못하고,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프랑스차 처럼 효과적으로 노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불편하다는 것이다.

한국시장에 가장 적합한 차는 어느 스타일이어야 할까? 우선 '미국차가 나쁘다'는건 선입견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미국차는 폼나고 넉넉하고 편안한 크루징에 좋은차다.

거친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선 예리한 핸들링과 단단한 서스펜션이 얼마나 필요할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것보다는 정숙하고 가족이 탔을 때 편안한 차를 선택하지 않을까?

알페온은 바로 그런 차다.



참고: 알페온은 어떤차?

알페온은 GM대우가 내놓은 차로, GM대우 브랜드나 시보레 브랜드를 전혀 붙이지 않고 독자적인 브랜드 전략으로 한국내에만 판매되는 차량이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라크로스(LaCrosse)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일부 지역에선 알뤼르(Allure)라고 불리기도 한다.

GM의 입실론II(Epsilon II) 플랫폼을 사용해 만들어진 차량이다. 이 플랫폼은 GM의 글로벌 플랫폼으로서 SAAB 9-5와 오펠 인시그니아에도 사용된다.

이 차는 '미국의 렉서스 대항마(Lexus fighter)'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정숙성과 럭셔리함이 강조된 차량이다.

미국 시장에는 2.4 , 3.0, 3.6 등 3가지 엔진이 제공되다가 3.0이 단종됐지만, 한국시장에는 3.0을 이번에 발표하고 2.4를 차차 내놓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