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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중국 베이징 모터쇼의 명암 - 한국차의 갈길은?

이 글은 제가 자동차 전문 매체 탑라이더에 게재한 글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관련 링크 : http://www.top-rider.com/news/articleList.html?sc_section_code=S1N7)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 된 베이징국제자동차산업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를 흔히 줄여서 베이징 모터쇼라고 하죠.

 

이번 모터쇼는 2일간의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5월 2일까지 10일 동안 계속 되는데, 기자들이 모이는 행사인 첫날 프레스데이에만 2만명이 넘는 인파가 현장을 찾았습니다.

제 아무리 인구가 많은 중국이지만 제대로 된 기자들이 이렇게 많을 수는 없겠죠. 더구나 중국은 언론이 통제 되는 국가다보니 정식 언론사 기자가 되기 위해선 기자 자격을 놓고 국가고시를 치뤄야 하거든요.

 

▲ 베이징모터쇼는 프레스데이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아니나 다를까 모터쇼장 앞에는 암표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별 희한한 사람들도 암표를 구해 현장에 몰려들었던 듯 했습니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 부스에서 중국인 기자들에게 돈봉투를 몰래 나눠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한 기자가 받은 돈봉투를 보니 200위안 정도, 그러니까 우리돈으로 한 4만원 정도가 들어있었습니다. 명분으로는 중국이 하도 넓으니 모터쇼까지 온 교통비나 밥값 명목이라고는 합니다. 사실 촌지나 뇌물이라고 하기도 또 애매하지만 돈 봉투를 건네는 부스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받는 입장에선 꽤 큰 돈이 될 수도 있겠죠. 여튼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기를 쓰고 모터쇼 프레스데이에 와야 하는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아직 중국 사회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거지요.

▲ 현대차 프레스 컨퍼런스 현장
◆ 베이징모터쇼 위상 높아지는 이유

베이징모터쇼에 몰려드는 인파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요. 일본이나 한국 같은 아시아권 기자들은 물론이구요. 유럽이나 미국 기자들도 취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서 완전히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이건 중국 시장이 세계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그만큼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반증이 될겁니다.

그도 그럴것이 세계적으로 자동차 시장이 불황을 겪던 지난 5년사이 중국은 자동차 등록대수가 150%나 증가했습니다. 이게 어느정도 물량인지 쉽게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에 등록된 자동차의 총 대수를 합치면 1800만대가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요. 중국에서는 2천만대씩이 매년 새로 판매되구요. 이미 등록된 자동차 숫자를 합치면 2억대가 넘습니다. 이미 3년전부터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나라가 됐습니다.

▲ 중국 길리기차 EMGRAND EX8

그동안 우리가 세계 최대 시장이라고 말했던 미국 인구가 총 3억 정도인데요. 중국의 인구는 적게 잡아도 13억, 많게 잡으면 15억명 쯤 된다고 하죠. 미국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시장이 될 전망이라는 겁니다. 중국 정부 또한 저소득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진행 중이어서 중국 자동차 시장은 더욱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입니다.

더구나 외국 업체들이 중국 시장을 더욱 탐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은 자체 기술력이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나라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 진출하려면 GM, 크라이슬러, 포드 같은 소위 빅3 업체들을 모두 물리쳐야 했는데, 중국은 상대가 안되는 차를 만들고 있으니 진입이 쉽고 만만하다는겁니다.

예전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골드러시라고 해서 미개척지의 금광을 찾아 나선 경우가 많았는데요. 지금 중국도 그렇게 개척되지 않은, 노다지가 숨겨진 땅으로 여겨지는 셈입니다.

◆ 베이징모터쇼 주요 차종은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말그대로 양극화 돼 있습니다. 엉성하기 그지 없는 현지 브랜드가 차를 내놓고 있는가 하면, 우리 돈으로 3억이 넘는 초호화 자동차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벤틀리, 람보르기니 같은 수억원짜리 스포츠카만 만들던 브랜드가 중국 시장을 주력으로 하는 초호화 SUV 콘셉트카를 선보였습니다.

 

▲ 람보르기니 우루스 콘셉트
중국인들의 상당수는 과시욕이 높아서 최고 부자라면 아무리 비싼차라도 사고마는 성향이 있는데요. 그동안은 가장 비싼 SUV가 우리 돈으로 불과 2억원 정도여서 중국의 부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는게 자동차 업계의 고민이었습니다. 중국 갑부들은 남들하고 차별화되고 과시할만큼 충분히 비싼 가격의 차가 필요하다는거죠.

따라서, 스포츠카를 만들던 초호화 브랜드가 SUV까지 만든겁니다. 이런 브랜드를 이용하면 5억원에서 10억원 정도로 비싼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겁니다.

 

▲ 벤틀리 EXP 9F 콘셉트

세단형 자동차 중 가장 비싼 차로 알려진 롤스로이스도 팬텀3를 비롯한 다양한 모델을 내놓고, 응접실처럼 꾸며진 커다란 부스에서 손님을 맞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감히 넘보기 힘들던 초호화 브랜드에서 중국 부자들 지갑을 열겠다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게 눈물겨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 친환경차는 어디로?

 

이번 베이징 모터쇼의 특징 중 하나는 예년에 비해 전기차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예년의 중국은 전기차 시대에 먼저 진입해서 선진 자동차 업체들을 빠르게 뛰어넘겠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었다는걸 감안하면 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건 당분간 당연한 일일겁니다. 우선 지난 몇년간 모터쇼에서 전기차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주행거리가 짧은 자동차라면 베이징 시내에서도 여유롭게 주행할 수가 없습니다. 베이징만 해도 끝에서 끝까지 150km나 되니까요.

 

▲ 현대차 쇼우왕 BHCD-1 콘셉트

더구나 호탕한 것을 가장 큰 미덕으로 생각하는 중국 부자들이, 남은 주행거리를 보면서 아슬아슬하게 주행하는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무엇보다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는 인식도 크게 줄었습니다. 전기차를 주행하려면 결국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중국은 90%가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드는 경우라면 연비 좋은 자동차에 가솔린을 태워서 주행하는 것에 비해서 그리 친환경적이지 못합니다. 어차피 발전할 때 매연과 이산화탄소가 나오거든요.

만약 원자력 발전소를 자유롭게 지을 수 있다면야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테지만,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론 원전에 대한 반대 인식이 크게 늘면서 화력발전을 원자력 발전으로 전환하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결국 친환경차가 단순히 전기차라는 생각을 좀 바꿔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전기차보다 디젤이나 저연비 차량이 친환경적인 차라고 보는게 맞겠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기업들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 시장을 잡기 위해서 단순한 전기차가 아닌 진정한 친환경적인 자동차를 내놔야 할 것이구요. 초호화 차를 원하는 요구에도 맞춰서 브랜드 이미지도 크게 끌어올려야 할 겁니다. 이래저래 앞으로 갈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