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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나는 수동변속기가 싫어요? 아, 섭섭한 세상

모처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한때는 한달에 두번씩 이곳에서 운전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면서 뜸해져 이제야 다시 아우토반에서 가속페달을 짓밟아 줄 수 있게 됐다. 꼭 일년만이어서 기대가 컸다. 


그런데 허츠 렌터카 테이블 앞에서 후배 김상영기자와 실랑이가 시작됐다. "아 글쎄 수동 변속차는 싫다구요. 귀찮아요!" 이게 무슨 소린가. 자동차기자가, 그것도 아우토반에서 자동변속기라니. 아우토반을 모독하는것 아닌가. 우리 돈 없어서 수동 빌려야해. 으름장도 놔봤다. 하지만 "그럼 제가 차액을 낼테니 자동변속기로 하시죠"란다. 모처럼 수동 변속의 경쾌하고 즐거운 느낌을 되살려 보는줄만 알고 살짝 설레기 까지 했는데 이렇게 까지 반발할 줄은 몰랐다.


결국 빌린건 볼보 V40. 매우 좋은차지만 역시 자동은 자동이었다. 나는 왼발이 있는데 이게 운전하는 동안에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여서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오른팔도 뭐 출발할때 한번쯤 존재를 확인할 뿐 이후에는 뭐하러 달렸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냥 멀쩡한 몸 일부를 퇴화 시키는거다.


수동을 말하자면, 클러치를 밟았다가 "팅"하고 튕겨내는 느낌, 기어를 집어 넣을 때마다 유럽차 특유의 척척 들어맞는 기계적인 느낌, 내가 운전을 잘하는구나라는 뿌듯함. 온몸이 유기적으로, 적절한 타이밍을 맞춰 리드미컬하게 춤 추듯 운동하고 있는, 빨리 달리고 싶을때는 내 몸도 바쁘고 빠르게 씩씩 대며 움직여서, 말하자면 자동차와 하나 된 느낌, 내가 가장 중요한 부품이 되어 착착 움직이는 기분이 든다.


반면 자동변속기는 페달만 바닥까지 밟고 언제 100km에 도달하나를 기다리는, 이건 전기밥솥에 취사버튼을 누르고 30분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이 그저 지루한 과정일 뿐이다.


대체 왜 우리가 자동변속기를 빌려야 하는거야. 내가 묻자, 후배 김상영 기자는 "요즘 누가 수동변속기 써요. 포르쉐도 안만들고 페라리도 람보르기니도 이제 수동변속기 안만들어요"란다. 아니 그건 더 빨리 달릴려고 듀얼클러치를 다는거지. "수동변속기는 낡아빠진거예요. 사람들이 무시해요." ... 할말을 잃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이 멋진 과정을 재미 없어 한다니.


지난해 금호 렌터카 창구에서 목격한 장면은 더 충격적이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예닐곱명이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한명이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모두 왁짜지껄 기아 카니발의 뒤에 타고 그 한명이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하는게 벌칙이라는 모양이다. 세상이 어떻게 돼가는건가. 우리 때는 다들 운전하려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리 세대를 지나면서부터는 더 이상 자동차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자동차란 이동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귀찮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원인은 자동차 회사 스스로에게 있다. 경제적, 친환경, 저연비, 운전 편의성, 편리하고, 많이 실리고, 저소음, 전자식 핸들... 요즘 우리 자동차 회사들이 신차를 내놓으면서 등장하는 홍보 중 대체 그 어떤게 쿨하고 매력이 있나. 경제적이어서, 짐이 많이 실려서, 연비가 좋아서 차에 반할 수 있을까?


현대차는 '감성'이 부족하다고 한참 지적 받더니 마치 감정이나 분위기 잡는게 '감성'인걸로 착각하고 '쏘나타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라는 역사상 최고로 오만한 광고 문구를 내놓기도 했다. 자동차에서 '감성'이란 달리는 박진감, 그게 심장을 울리는 느낌, 차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차가 마치 나의 연인인 것 같은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지 차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청승에 빠지거나 오디오 소리를 끝까지 올려 민폐를 끼치는게 감성이 아니다.


그럼에도 차는 잘 팔려왔다. 경제적이라고, 성능 좋다고, 자동차 기자들도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숫자의 나열로 그런가보다 하면서 샀다. 맨날 똑같은 차를 내놓으니 차는 다 이런건가 싶게 만든다. 기자들도 기껏 신차발표회에 가도 쓸 말이 없어 기운이 빠진다.


아이가 잘 받아먹는다고 세살 넘어서도 줄곧 분유만 먹이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우리 자동차 회사들은 그저 순간 팔릴 차를 만드는데 급급해 소비자들이 바로 필요하다는 차만 잔뜩 찍어냈을 뿐, 그 외에는 만들지도, 도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연구 개발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자신들이 어떤 차를 원하는지조차 그 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국내 시장 80%를 차지하는 제조사가 내놔야 그게 어떤건지 알지. 내놓지도 않고 '한국 소비자들이 큰차에 힘없는 엔진을 좋아해서...' 어쩌고 저쩌고. 그러더니 수입 디젤 소형차의 맛을 알아버린 소비자들에게 뒤늦게 '우리도 디젤 있다'면서 러브콜을 날리지만 때는 늦었다.


결국 뻔한 차만 계속 내놓던 자동차 회사들이 이제는 소비자들의 외면에 직면했다. 벌써 몇년째 내수 침체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침체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더 이상 차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끝없는 침체다. 모든게 우리 자동차 회사들의 자승자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