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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동차 회사들,이제 체험의 시대…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전쟁 직후 한국에는 드럼통을 펴서 만든 '시발택시'가 있었다고 한다.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 부품을 가지고 어찌 대충 조립해서 달릴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형편 없었지만 당시는 달릴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었을거다. 어쩌면 그때부터 자동차는 그저 굴러만 가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수십년간 지배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대중교통도 발달해 더 이상 자동차가 그저 실용적인 물건이어서는 안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자동차를 가지는 것 자체가 자신을 표현하고, 더 나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시발택시의 모습. 이때야 자동차가 굴러만 가면 되는거였겠지만. 지금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선지 선진 자동차 제조국들은 자동차를 통한 체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친다. 국내 제조사들도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럭셔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오프라인에서 때로는 인터넷 가상공간에서도 펼쳐지는데, 비록 아직은 시작단계지만 장차 더 나은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믿어진다. 이같은 자동차 회사들의 다양한 체험 공간을 살펴본다. 


#폭스바겐, 아우토슈타트


모처럼 청명한 볼프스부르크의 하늘이다. 때 마침 금발의 독일인 가족이 폭스바겐 아우토슈타트를 찾았다. 남편은 갓난아이를 안았고 와이프는 유모차를 끌고 있다. 너댓살쯤 돼 보이는 어린아이는 제 몸뚱이만한 번호판을 들고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들뜬 가족들의 표정에 나도 몰래 미소가 지어진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폭스바겐 아우토슈타트의 야경(왼쪽)과 번호판을 들고 이곳을 찾은 가족들


잠시후 출고장에 가보니 한 노인이 폭스바겐 파사트의 트렁크를 열고 직원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직원에게 '전동식 트레일러 견인 장치'를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그가 특별 주문한 것인데, 버튼만 누르면 고리가 튀어나와 트레일러를 장착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 중 몇명이 갑자기 웃으며 박수를 쳐준다. 자신들도 새차를 구입하는 감동적인 순간의 느낌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폭스바겐 오너가 되는 것은 단순히 차를 구입하는게 아니라 패밀리에 속한다는 느낌이었다. 노인도 "나는 지금 차를 구입한게 아니라 가족을 입양한 것"이라고 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폭스바겐 공장인 볼프스부르크는 도시 자체가 어두침침했고 폭스바겐 출고장은 초라하기만 했고, 출고장에서도 마치 주입식 교육처럼 진부한 설명이 이어질 뿐이었다.


폭스바겐그룹 의장 페르디난드-피에히(Ferdinand Piëch) 박사는 “본사에서 직접 차를 받아간 고객이라면 팬이 돼야 마땅한데,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이같은 건물을 만들기로 했다. 당시 회장이던 피에히는 이곳을 단순한 차량 출고장이 아닌 거대한 자동차 테마파크를 건설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1994년부터 약 6246억원(4억3천만 유로)이 투자됐고 2000년 6월이 돼서야 마무리됐습니다. 폭스바겐의 거대 자동차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Autostadt)’는 이렇게 탄생됐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사를 논하다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건물은 총 8층 규모며 박물관 관람을 위해서는 ‘타임머신‘이라고 불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향한다. 이후 건물을 빙 돌아서 걸어 내려오며 관람하면 된다. 한쪽 방향으로 내려와도 총 2킬로미터 길이다. 총 12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됐으며 크게는 승용차 전시관과 상용차 전시관, 모터스포츠관으로 나뉜다. 때에 따라 테마가 변경되는 이벤트관도 마련됐다. 약 160여대의 차가 전시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의 야경(왼쪽)과 '타임머신'이라 불리는 엘리베이터


다른 브랜드의 박물관은 자사의 제품이나 역사를 소개하는게 중심이지만, 메르세데스-벤츠는 자동차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주의다. 

이곳의 엘리베이터가 타임머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박물관 관람이 맨 꼭대기층부터 시작되며 그곳에서부터 연대별로 스테이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다. 꼭대기층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황당하게도 ‘말’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이전 이동수단은 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 박물관은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다. 유구한 역사 동안 자랑할 것이 한두개가 아닐테니 이해가 된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자존심과 자긍심이 유독 강하게 표현되지만, 그 또한 용인되는 마법도 함께 전시해 놓은 듯 하다. 벌써 두번째 방문이지만 다음에도 슈투트가르트를 가게 된다면 분명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다.


# BMW, 더 나은 출고장 


BMW는 2007년 10월 BMW벨트(WELT:World)라는 건축물을 만들어 개장했다. 어마어마하고 화려한 외관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이 건축물의 주된 용도는 놀랍게도 신차 출고장이다. '신차 출고센터'라면 단순히 키만 넘겨주는게 아니라, 차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단순히 이 차가 아니라, 이 차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BMW의 엔진 구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가면서 배우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눈길 주행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등 BMW 차량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져 있다. 


독일 뮌헨의 BMW 벨트의 야경(왼쪽)과 실내의 전경


어린이들이 '디즈니 월드'에서 기뻐 날뛰듯, BMW 마니아들은 'BMW 월드'의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뮌헨의 주요 도로변에 위치한 이곳은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 수 있는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기도 하다. 건축물은 좌측에 보이는 소용돌이가 건물의 대부분을 받치는 기둥 겸 벽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실제 건물 내부에는 얇은 기둥이 6개 있을 뿐이다. 디자인상으로는 이 소용돌이가 건물 안으로 들이친다는 이미지를 살려 설계됐다. 소용돌이 한 가운데는 최신 자동차가 전시되는데, 태풍의 핵이라는 의미를 살렸다.   


소용돌이 벽과 얇은 기둥 몇개만으로 건물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건물 내부는 매우 넓직하고 쾌적한 공간이다. 이 정도 기둥으로 천장을 잘 받쳐줄 수 있을까 싶어서 좀 두렵기도 하다. 


인터랙티브 게임 등으로 BMW의 이피션트 다이내믹스(Efficient Dynamics)를 직접 체험 해볼 수 있게 돼 있다. 예를 들어 싱글터보와 트윈터보를 만들어놓고 직접 손으로 돌려보게 한다거나, 기타 여러 체험 장치를 통해 BMW 기술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BMW의 주장은 "차를 가져가기 전에 차에 관한 기술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BMW 오너’의 자긍심이 생기고, '마니아'가 되어 재구매를 하거나 또 다른 BMW 오너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내 차 형편없어"라고 말하는 오너 만큼 마케팅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또 어딨을까.


# 기아차의 ‘K'는 ‘체험’


기아차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체험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번 K9의 체험행사의 경우 독특하면서 참신했다. 콘라드 호텔 9층에서 있었던 살롱드K9이라는 행사는 기아 K9의 신차를 소개하는 한편, 가망 고객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살피는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했다. 9개방을 하나씩 지날때마다 수염을 깎아주는 그루밍 서비스를 해준다거나, 클래식한 방법으로 구두를 닦아주기도 했고, 정확한 신체 치수를 재서 스타일을 제안하는 서비스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유명 패션브랜드 ‘반하트디알바자’와 함께 장시간 운전에도 구겨지지 않는 ‘K7 수트’를 공개하기도 했고. 패션쇼, 스타일링 클래스 등 ‘스타일’에 중점을 둔  행사를 '젠틀맨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최근에는 그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 K7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형 헬스 트레이닝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디자인드 바이 케이(Designed by K)'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했다. 


기아 K9의 체험 마케팅. 구두를 닦아주거나 옷을 맞춰주거나, 혹은 수염을 깎아주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처음엔 좀 의아하기도 했다. 제공하는 서비스를 보면 얼핏 자동차와 직접 관계가 없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설명이 재밌다. ‘그 동안 제품의 속성만을 위주로 광고 등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이제 그 방식을 뛰어 넘겠다’는 것이다.


‘K시리즈’ 고객들의 특성과 니즈를 분석해 그에 적합하게 ‘디자인한’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를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양적ㆍ질적 성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를 타는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를 변화시키고 고객에게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기획 했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고객들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기아차는 영화감독, 사진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가 촉망되는 아티스트들이 영상물을 연출하게 하거나 패션, 미술, 취미, 여행, 자동차 등의 전문 잡지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에디터들이 참여해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했다.


# 기아차, "인터넷이 더 효과적" 


기아차는 콘텐츠의 차별화와 함께 기존 TV 광고 등 전통적인 매체를 중심으로 한 광고 위주의 커뮤니케이션 대신 온라인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기아차 조사 결과,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의 커뮤니케이션은 TV 광고를 비롯해 전통적인 매체 광고를 통해 이뤄지는데, 신차 인지도를 높이는데는 효과적일 수 있어도 광고 집행 중단과 함께 관심이 빠르게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기아차는 캠페인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더 높은 여론 점유율(SOV, Share of Voive)를 차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목표가 너무 큰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아차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은 디자인과 관련한 기아차의 새로운 도전"이라며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를 디자인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놀라움과 새로운 가치를 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실 국내 기업들의 체험 마케팅은 그리 대단한 수준까지는 아니다. 아직은 독일이나 일본 같은 자동차 선진국에 비할 단계는 아니고, 시작 단계인만큼 좀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자체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쳐줄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