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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5000~7000만원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시승기...이보다 강한차 있을까?

미쓰비시는 한달에 30대도 채 못팔아서 고생하는 브랜드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팔만한 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포티카인 랜서나 이클립스, 그리고 SUV분위기 자동차 아웃랜더 등이 나오지만, 그 차들은 국내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기는 역부족입니다.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이 아직 미쓰비시를 '그렇고 그런 브랜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기자들에게도 거의 비아냥 수준의 시승기를 얻어내더군요. 톱기어, 모터트랜드, 자동차생활 등 국내 주요 매거진에서는 물론이고 인터넷 언론들의 대부분에서도 '스타일은 좋아할 사람도 있겠다'는 정도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부분을 부각해야 하는 것이 매거진 시승기의 숙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런 평가는 원색적 비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쓰비시는 작년 11월에 7대를 팔더니 12월에는 15대를 팔았습니다. 올해초는 30대 수준입니다. 회사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미쓰비시도 감동적인 차를 한가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랜서 에볼루션'인데요. 이 차를 나쁘다고 평가하는 기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차의 유일한 문제라면 연비가 낮다는 점. 그리고 가격이 높다는 점입니다.

2.0리터급 엔진을 갖춘 4륜 구동 스포츠세단 랜서 에볼루션(Lancer Evolution)은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랠리카'를 양산화한 차입니다. 마니아들 사이에선 란에보, 혹은 에보 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물론 에보는 BMW evolution과 혼동되기 때문에 좋은 별칭은 아닙니다만)

여튼 란에보는 1995년 WRC(월드랠리챔피언십)부터 6차례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최근 미쓰비시의 경영란으로 WRC에 직접 참가는 못하고 있지만, 일본 자동차 연맹(JAF)에서 주최하는 '전일본 짐카나 선수권'이나 '전일본 더트 트라이얼' 등에서는 80~90퍼센트가 이 차를 이용할 정도로 경주 성능이 뛰어난 차입니다.


◆ 고급 기능, 그래도 비싸보이진 않네

랜서 에볼루션의 외관은 일본 SF 만화에 등장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다만, 작은 차체와 젊어 보이는 디자인으로 인해 값비싼 차로 느껴지지는 않는 것이 단점입니다.

스마트키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어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 잠긴 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버튼 타입은 아니지만, 시동키 없이 레버만 돌리면 시동이 걸리는 시스템입니다.

시동을 거니 우렁찬 배기음이 이 차가 얼마나 대단한 차인지를 웅변하는 듯 했습니다.

레카로(Recaro) 풀 버킷시트는 몸을 바짝 죄어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높이 조절이 안돼 키가 작은 여성운전자는 쉽게 운전할 수 없었습니다. 역시 남성만을 위한 차라는 느낌입니다.

차가 파란 원색이어서인지 주로 젊은 남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심지어 손가락질까지 하며 쳐다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차를 세워두면 "란에보가 벌써 시판됐느냐"며 말을 걸어오는 젊은이들도 있었습니다.

양산차에서는 보기 드문 '락포드 포스게이트(Rockford Fosgate)' 오디오가 내장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프터마켓에서 튜닝용으로는 자주 장착하지만, 양산차에 장착된 것은 처음봤습니다. 의외로 사운드가 섬세하고 서브우퍼 또한 강력해 밤의 마니아들(?)에게 인기 좀 끌겠다 싶습니다.


◆ 강한 달리기 성능

기어노브를 D로 놓았는데, 뭔가 어색하더군요. 이 차의 듀얼 클러치 변속기(SST)는 '크립핑' 현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듀얼 클러치란 수동기어와 자동기어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어 1) 변속이 빠르고 2)출력의 손실이 적고 3)연비도 뛰어난 차세대 변속장치입니다.

엑셀을 밟으면 반응도 즉각적이어서 스포츠 드라이빙에도 적합하게 느껴졌습니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지상태에서 브레이크만 떼면 슬슬 나가는 '크립핑' 현상이 적어 부드러운 운전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엔진은 6500RPM에서 295마력을 내는데, 트윈 터보장치 덕분인지 가속감을 좌우하는 '토크'가 매우 높았습니다. 4000RPM에서 41.5kg·m를 내는데 그 가속 느낌은 누가 뒤에서 등을 확 밀어버리는 느낌입니다.
 
다른 차에서 보기 힘든 반응입니다. 일례로 3.7리터 엔진을 장착한 인피니티 G37 쿠페는 최고출력은 333마력으로 란에보보다 높지만, 최대토크는 5200rpm에서 37.0kg.m입니다. 란에보쪽이 훨씬 강력한거죠.

엑셀을 건드리자 차가 굉음을 내면서 튀어나가는 느낌입니다. 이건 뭐 도무지 얌전하게 운전할 수가 없습니다. 순간 가속력이 워낙 뛰어난데다 짜릿해 조금만 운전해도 식은땀이 납니다.

◆ 돌고 서기는 란에보가 최고

"어어~"

신나서 달리다가 무려 시속 120km로 오른쪽 코너에 진입했습니다. 각도가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어 보입니다. 왼편 가드레일을 들이받을것 같습니다.

이럴때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일것인가 혹은 엑셀을 더 밟아 오버스티어를 만들면서 빠져나갈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몸은 나도 모르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감고 엑셀을 끝까지 밟습니다.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지만, 지나고 보니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차는 스스로 자신의 왼쪽바퀴에 토크를 넣고 오른쪽 바퀴에는 브레이크를 잡습니다. 차가 미끄러지면서도 절묘한 각도로 파고듭니다. 분명 미끄러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핸들을 꺽은 각도 그대로 돌아옵니다.

뭐... 뭐야 이건...

가벼운 스핀과 함께 카운터 스티어를 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차가 스스로 가볍게 돌아나와 버리니 운전자가 머쓱해졌습니다.

4륜구동이라는 점 때문에 그립력이 강하게 작용하는데다 디퍼런셜록을 전자제어하는 AYC(엑티브 요 컨트롤), ADC(액티브 디퍼런셜 컨트롤) 기술이 갖춰진 덕분입니다. 시판하는 양산차 4륜구동 시스템 중 가장 앞선 기술입니다.

이 움직임을 도저히 글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말하자면 차체가 급코너에서 노면에 딱 붙어서 도는 듯한 느낌입니다. 미끄러지지도 않지만 미끄러져도 엑셀만 밟고 있으면 스스로 복구하는 힘이 대단합니다. 이런 그립력을 가진차는 생전 처음 봅니다.

물론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면 차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으니 코너에서도 차를 믿고 계속 엑셀을 밟는 '간튜닝'이 먼저 돼야 할 것입니다.

브레이크는 브램보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어떤 상황에서건 정확하게 정지해줍니다.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면 꽝!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날카로운 반응으로 차가 정지합니다. 서스펜션은 아이바흐 스프링에 빌슈타인 쇽업소버, BBS 18인치 휠이 장착됐습니다. 튜닝할 수 있는 것이 다 되어있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높은 RPM을 계속 이용하면서 10여분 가량 산길을 오르내리자 계기반에 'Slow Down'이라는 문구가 표시됐습니다. 그러더니 엑셀을 밟아도 속도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엔진의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 ECU가 출력을 제어한 것입니다. 속도를 내면 빠른 공기흐름으로 인해 엔진이 식겠지만, 느린 속도에서 높은 출력으로 계속 몰아붙이니 문제가 생긴것으로 보였습니다. 천천히 달리며 차를 좀 식히니 다시 최대 출력으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터보를 장착한 차량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대부분 이같은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BMW M3나 335i 등의 고성능 차량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성능 차들은 마냥 달리는게 아니라 수온계를 잘 보면서 운전해야 합니다.


◆ 이대로 랠리도 가능하겠다

유명 랠리카 드라이버들의 영상에서 좁은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사실은 이렇게 뛰어난 차를 주면 나도 가능하겠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랠리 드라이버가 된 듯한 착각이 듭니다.

연비는 10km/l를 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었지만, 조금만 밟아도 리터당 3~4km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도 150km밖에 달릴 수 없었으니 서울에서 부산 갈때는 출발하고 무려 4번이나 주유를 해야 합니다. 한번 넣고 부산 왕복하는 차도 있다던데 쩝.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되는 세팅이지만, 마니아들은 이 차에 열광합니다. 어떤 차도 따라올 수 없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 어휴 비싸다

6200만원이라는 차량 판매 가격이 발표됐죠. 사실 미국서 328i보다 비싼차이다 보니 그 정도 가격이 책정된 것도 일견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조금만 싸면 잘 팔렸을텐데요.

만약 미쓰비시 공식 수입원인 MMSK가 조금만 더 영악(?)해서 이 차를 저가에 한정판매 했으면 어땠을까요. 손실은 마케팅 비용으로 감수하고 5천만원에 100대만 팔았더라도 미쓰비시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보다 한결 좋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