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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한국GM으로부터 '동영상 삭제' 요청 받았습니다 (양심선언?)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여러분들의 고견을 물어보기 위해 글을 올립니다. 저는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저는 탑라이더(http://top-rider.com)라는 작은 자동차 전문 신생매체에 근무하는 기자입니다. 사이트가 열린지 아직 일년이 채 되지 않았고, 제가 이 회사에 들어온지는 불과 4개월 밖에 안됐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사건은 지난달부터 시작됐습니다. 지난달 6일, 한국GM 관계자로부터 기사를 내려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문제 기사는 '캡티바 시승회' 관련 동영상과 기사 2건이었는데요. 당시 내용은 대략 "보닛이 너무 물러서 냉간 공회전시 출렁거리는 일이 있었고, 관련자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다, 그동안 라세티프리미어와 알페온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보령 변속기 문제도 여전히 있더라"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문제의 (삭제된) 쉐보레 캡티바 동영상

그런데 기사를 본 GM관계자가 전화하시더니, "기사가 너무 한쪽에 치우친 것 같으니 죄송하지만 삭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저는 기사가 치우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싶어서 관련 기사를 모두 삭제했습니요. 사실, 기사는 올리는것보다 삭제하는게 훨씬 어려운 일이어서, 당시 관련 업체들로부터 싫은 소리 들어가며 야근하면서 일일히 삭제했었죠.



그런데 며칠전에는 제가 올린 쉐보레 올란도 관련 동영상을 보더니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내용은 "안그래도 탑라이더에 마케팅(광고게시)을 하기 위해 마케팅팀에 요청하고 있는데, 자꾸 이런 기사가 나와서 (광고를 집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기사를 삭제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마케팅 얘기까지 끄집어 내기에 화가나서 "우리는 앞으로 한국 지엠의 광고는 절대로 안받겠고, 글도 삭제 못하겠다"고 맞섰습니다. 마침 한국지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 몇가지도 차례로 준비돼 있었던 터여서 물러서기도 힘든 입장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 다음과 같은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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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요청] 올란도 관련 동영상 게시 중단 요청

안녕하십니까? 한국GM 디지털 마케팅팀  OOO 입니다.


귀하께서 You Tube 사이트등에 게재한 '쉐보레 오너들 후회하는 까닭은?' 아래와 같이 정중히 삭제 요청 드립니다.

 
요청사항 : 동영상 게시 중단
요청 URL : http://www.youtube.com/watch?v=7agERI_H5HY 이외 해당 동영상 배포된 사이트


해당 동영상은 근거 없는 내용으로 해동 동영상으로 인해

당사의 제품 전반에 대해 명예에 실추가 우려 되는 바 해당 동영상에 대해 게시 중단 요청을 드립니다.

 

해당 동영상은 '정보통신망법'에 의거하여 인터넷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명예훼손에 해당함으로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다시한번 정중히 해당 동영상에 대한 게시중단을 요청 드리며,
본 메일은 차후 법적판단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메일을 보고 머리가 띵 해지는 느낌이 드네요.

만약에 제가 전에 있던 조선닷컴이었거나 경향신문에 계속 몸담고 있었으면 한국지엠이 과연 이런 메일을 보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또, 이게 바로 소비자들이나 블로거가 지엠 제품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때 대응하는 방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메일에 담긴 '제품의 명예 훼손'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해본 법률인데, 만약 정말로 그런게 있다면 제가 훼손한 것 같기도 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해도 할말이 없겠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여튼 차후 법적판단 근거자료로 이 메일이 활용된다고 하니 섬뜩하기도 하구요.

추호도 양심에 꺼려지는 내용이 없으니 소송으로 이어진다 해도 전혀 문제는 아닙니다만, 작은 회사에 근무하는 기자의 입장이라는게 참 찹찹합니다. "기사 내려드릴테니 광고 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건지, 아니면 한국 지엠과 소비자들이 자사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양심을 믿고 끝까지 버텨야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여러분들 의견을 통해 이 글과 동영상을 삭제하든, 혹은 양심껏 한국지엠에 관련해 준비돼 있던 기사를 순서대로 공개하든 방향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