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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폭스바겐이 포르쉐 지분 100% 인수? 천만의 말씀…

최근 국내 언론 보도를 접하신 분들은 "포르쉐가 폭스바겐을 인수하려 하다가 재정상태가 악화돼 폭스바겐이 거꾸로 포르쉐를 인수했다"고 알고 계신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일부 기자들이 실수 했던 부분이고,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측도 굳이 사실을 밝히기 꺼려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전에도 이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 폭스바겐이 포르쉐 지분을 100% 인수했다는 기사가 또 떴기에 전의 글을 재탕해서 다시 한번 써봅니다.


- '폭스바겐법'이란


폭스바겐은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메이커지만, 2005년까지는 <국민차 법(Volkswagen law)>으로 불리는 독일 작센주 법률에 따라 주식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20%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특정 이익집단이 차 가격을 높이거나 국민들을 위한 대중차 만들기를 꺼릴 것을 우려한 합리적인 법률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부자라도 먹지 못하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로인해 반작용도 있었는데, 직원들이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 걸맞게 빠른 의사결정을 한다거나 노력을 하지 못하고, 말하자면 '공무원화' 되어간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 피에히와 포르쉐 가문


   
▲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

천재 발명가 페르디난드 포르쉐는 신화적 인물입니다. 포르쉐를 창업했을 뿐 아니라 폭스바겐의 창업주이기도 합니다. 그는 두 자녀를 두고 있었는데, 이 둘은 각기 독일에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세기의 가문을 일궈냈습니다.


딸인 루이스 포르쉐 쪽이 유명 법률가인 안톤 피에히와 결혼해 '피에히' 가문을 일으키고 아들인 페리 포르쉐 쪽은 '포르쉐' 가문을 이뤘습니다. 이후 한 세대가 흘렀고 현재 포르쉐SE라고 불리는 포르쉐AG(제조사)의 지주회사는 포르쉐의 외손자 피에히(Dr. Ferdinand K. Piëch)로 대표되는 피에히 가문과 친손자 부찌 포르쉐로 대표되는 포르쉐 직계 가문 쪽을 합치면 총 90%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포르쉐라는 회사 자체가 포르쉐 가문의 패밀리 비즈니스 업체입니다. 따라서 포르쉐AG의 사장이 제 아무리 바뀐다 해도 포르쉐의 주인(오너십)은 변함없이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입니다.


물론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은 70년대 포르쉐의 경영권을 놓고 '포르쉐 가문 전쟁'을 벌인 후 '앞으로 포르쉐 경영은 포르쉐 가문이 아닌 사람을 임명한다'는 내용의 신사협정을 맺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분의 거의 대부분을 가진 오너가 회사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을거라는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겠죠.


- 페르디난드 피에히


 '포르쉐'의 대주주. 그러니까 실질적 주인인 피에히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폭스바겐AG의 사장을 맡았고, 현재까지도 이사회의 의장(Chairman of supervisory board), 일반 기업으로 치면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입니다.


피에히는 폭스바겐AG의 이사회 의장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폭스바겐 지분이 많지 않고, 폭스바겐 법으로 인해 개인적인 의결권도 크지 않았습니다. 딱 준 국영기업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던 겁니다.

   
▲ 페르디난드 피에히와 주변 관계


- 폭스바겐법이 깨지다


수십년간 문제없던 <국민차법>은 2000년 들어서부터 큰 변화를 겪습니다.


카타르 등 중동 자본이 폭스바겐 지분을 끌어모았고, 독일 정부는 폭스바겐이 중동에 팔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피에히는 폭스바겐을 지킬 수 있도록 의결권 제한을 없앨 것을 공론화 시켰습니다. 만일 대주주가 있어 "주식 안판다"고 해버리면 문제가 없지만 수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라면 회사를 중동에 넘길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였습니다.


피에히를 주축으로 한 폭스바겐 이사회가 방어를 명분으로 의결권 제한을 없앨 것을 작센주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하자, 결국 의결권 제한이 폐지될 것으로 가닥이 모아지게 됩니다. '그림의 떡'이던 폭스바겐이 누구나 탐낼만한 회사로 거듭난겁니다.


   
▲ 폭스바겐 AG와 포르쉐 AG, 포르쉐 SE의 관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포르쉐SE의 오너인 피에히와 포르쉐 일가는 먼저 포르쉐AG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 100% 자회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더니 같은해 10월에 폭스바겐 주식 18.5%를 인수합니다. 이듬해 지분을 25% 까지 인수하면서 폭스바겐의 대주주가 됐습니다.


이는 주식시장을 통한게 아니라 폭스바겐AG의 동의를 통해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 싯가보다 저렴하게 넘겨줘 가능했던 것입니다.


주식을 구입하는 입장인 피에히가 동시에 주식을 판매하는 폭스바겐AG 의장으로 있었고, 주식 발행과 가격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니까요. 이같은 행위에 깜짝 놀란 독일 정부의 몇몇 위원들은 부적절한 일이라고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인수 시나리오는 이미 진행 됐습니다.


불과 5년만에 포르쉐SE가 인수한 폭스바겐AG의 의결 주식은 이미 50.74%에 달했습니다.


-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 폭스바겐 의결권과 함께 떼돈을 벌다


포르쉐AG의 매출은 2003년에는 55억유로, 2007년에는 73억유로로 조금 늘었을 뿐이지만, 포르쉐SE가 2005년부터 사들인 폭스바겐 주식 가격은 큰폭으로 상승했습니다.


이 덕분에 2003년에는 연간 9억3천만유로였던 포르쉐SE의 순수익은 2007년들어 연 58억유로(약 8조4천억원)로 6배 가량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 폭스바겐 그룹과 포르쉐의 관계도 (2010)

또, 폭스바겐 이사회 의장이면서도 별다른 의결권은 없던 피에히는 폭스바겐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큰 손'으로 거듭났습니다.


결과를 보면 사실상 포르쉐와 피에히 집안이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 그룹>을 인수한 셈입니다.


- 폭스바겐이 포르쉐 지분을 인수? 대체 누구한테서?
 
비록 포르쉐SE가 비교적 저렴하게 폭스바겐AG를 인수하긴 했습니다만, 문제는 이때 발생한 비용입니다. 부채로 잡혀 있는 비용을 탕감하기 위해선 현금이 필요하겠죠.


이에 지난해부터 폭스바겐AG는 자사의 자금으로 다시 포르쉐AG의 지분을 100% 구입하게 됩니다. 구입을 했다면, 대체 누가 팔았을까요?
 

   
▲ 폭스바겐 그룹과 포르쉐의 관계도 (2012)

몇년전 까지만 해도 포르쉐AG의 지분은 100% 포르쉐SE, 즉 포르쉐가문과 피에히가문(카타르 10%)이 갖고 있었는데, 바로 이걸 폭스바겐AG가 구입한겁니다. 결과적으로 폭스바겐이 포르쉐 가문에 지불한 구입 비용이 80억유로(12조원)가 넘는 셈입니다.
 
그러면 이 가문들은 회사를 팔았으니 경영권이 사라지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피에히는 여전히 폭스바겐AG의 이사회 의장입니다. 지분을 판 것은 포르쉐제조사인 포르쉐AG고 폭스바겐 지분을 가진 포르쉐SE는 여전히 폭스바겐AG의 대주주입니다.


만약 포르쉐AG가 폭스바겐AG 지분을 사들이고, 폭스바겐AG가 포르쉐AG의 지분을 사면 상호출자로 불법이 되니 이 두 회사의 지주회사인 포르쉐SE가 폭스바겐을, 폭스바겐이 포르쉐AG의 지분을 갖게 돼 있습니다. 적은 지분으로 기업의 경영권을 갖는 방식이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과 같은 형태입니다. 


결국 피에히와 포르쉐 가문은 돈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 두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 했을 뿐 아니라, 수익에서도 무려 현금 12조원 이상을 거둬 들인셈이죠.

   
▲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 페르디난드 피에히
 
- 누가 누구를 인수한건가?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폭스바겐이 포르쉐를 인수했다'거나 '포르쉐가 폭스바겐을 인수했다'는 식의 기사는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라는 점을 아셨을겁니다.


지분구조로 보면 포르쉐SE가 폭스바겐AG를, 폭스바겐 AG가 포르쉐AG를 인수했다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포르쉐는 원래부터 패밀리 비즈니스였고, 결과적으로 폭스바겐만 그 패밀리 비즈니스에 편입된 것이니까요.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산게 아니라 위에 계신 분 결정에 따라 두 회사가 통합 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두회사는 지분구조와 관계 없이 피에히-포르쉐 가족이 쥐고 흔들 수 있는 회사가 된 겁니다. 마치 현대차와 기아차가 어떤 지분관계를 갖든 한 일가가 운영하는 회사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