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현대차 쏘나타의 연비 관련해 오류가 있었고 이를 정정했다는 내용은 아마 익히 들으셨을겁니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발표에서 신형 쏘나타의 연비가 12.6km/l로 '국내서 가장 우수한 연비'라고 자랑했는데,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측정한 결과 이보다 4% 정도 낮은 수치가 나오는 상황이어서 정정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뒷 얘기들이 있으니 몇가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로이터 통신이 보도
증권정보 전문 업체인 로이터통신 미국판은 '현대차가 연비 관련 소송에 휩싸인데 이어 신형 쏘나타의 연비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기자들에게 제공해 신뢰도를 더욱 약화시켰다'고 보도했습니다. 로이터를 받아 쓰는, 예를들면 Autoblog 같은 매체도 역시 비슷한 내용을 적었습니다.
- 에너지 관리공단이 왜 다시 측정을 했는가
원래 자동차의 연비는 자동차 제조사가 스스로 측정해서 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만 하게 돼 있습니다. 에너지 관리공단은 이를 전수 검증하지 않지요. 그래서 이를 공인연비가 아니라 표시연비라고 합니다. 다만 차가 나온 후에 사후 검증이라는걸 하는데, 지금까지는 사후 검증 수치가 제조시점에서 5% 이상 차이가 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게 우리 법이었습니다.
에너지 관리공단이 간혹 몇몇 차종을 사전에 검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크게 3가지라고 합니다. 1) 이전과 같은 파워트레인인데 연비가 크게 향상된 경우, 2) 이전에 사후 검증을 했을때 연비가 제조사가 내놓은 것과 꽤 차이가 있어 5%에 가까울때 3) 판매량이 워낙 많은 차종
신형 쏘나타에 있어서는 이 세가지 모두가 작용한 것 같다고 합니다.
- 갑자기 정부에서 현대차 연비를 고쳐? 왜?
산업부(구 지경부)산하의 에너지관리공단이 현대차가 내놓은 연비를 하향 정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예전 같으면 현대차와 부처간의 관계가 친밀했지요. 현대차가 내놓은 연비를 굳이 손대서 '수출기업의 발목을 잡는 역적' 같이 보이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친환경 녹색성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말끝마다 이를 강조해왔는데, 이 중심에는 자동차가 먼저 떠오르는 면이 있고, 그 단어의 조합이 환경부, 국토부를 자극하는 면도 있습니다. 결국 이들 모두가 자동차의 친환경성이 자신의 업무라고 보고 기존 산업부(구 지경부)의 연비 측정 등의 업무에도 모두 관심을 갖게 된겁니다.
실제로도 국토부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같은 정황이 드러납니다. 국토부는 최근 그동안 산업부가 적합 판정을 해온 현대 싼타페(DM)나 쌍용 코란도의 연비가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는가 하면, 보도자료를 통해 '연비 사후 검증 기준이 엄격한 국토부식으로 통일 된다'는 내용을 여러차례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국토부만 자체 주행 시험장이 있고, 국토부가 내놓은 사후 검증 기준에는 실제 주행시험이 포함 돼 있기 때문에 국토부식으로 통일하면 결국 사후검증은 사실상 국토부가 도맡아 하게 됩니다. 산업부도 '주행시험장 없이 일반 도로에서 측정하면 된다'고는 하는데 이건 재현성이 떨어져서 아마 힘들것 같습니다.
여튼 부처간 다툼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선 어떤 부처도 현대차와 '짜고칠'수는 없지요. 부처간 다툼이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아주 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정부 부처 입장에서도 '영웅주의'를 통해 주도권을 얻으려는 입장도 있을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연비 오류 발견 과정은?
앞서 현대차는 에너지관리공단에 LF쏘나타 연비 '12.6km/l'를 승인 신청했습니다. 공단은 지난 11일, 현대차로부터 실제 LF쏘나타 차량을 받아 석유관리원을 통해 연비를 측정했지요.
그런데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LF쏘나타는 두 번의 연비 시험에서 모두 오차 범위인 -3%를 넘었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에너지관리공단이 공개한 12.1km/l보다 한차례는 낮았고 다음번은 그보다 조금 높았습니다. 소숫점 둘째자리 이하로 정확하게 맞았는데 이 평균값을 낸게 12.1km/l입니다.
12.1km/l면 현대차가 내놓은 것 보다 불과 4% 낮은 수치죠. 최근 연비 기준이 강화 됐기에 망정이지 기존 기준은 5%였으니 기존대로라면 현대차가 내놓은 수치대로 판매 됐을 겁니다. 이번에 테스트 한 차종은 2.4 모델을 비롯한 4개 차종인데요. 1개가 4%고 나머지는 오차가 -3% 이내라는 것이지 다른 차종에 오차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고보면 3%의 오차는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허용 오차를 1% 이내로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 이번에 수정된 연비는 정확한가
아닙니다. 연비는 크게 야외에서 측정하는 코스트저항(타성주행)측정 + 실험실에서 측정하는 랩실험이 합쳐져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코스트저항 측정은 아직 산업부에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검증도 안하고 그냥 제조사가 내놓은대로 인정하는겁니다. 이번 신형 쏘나타의 연비를 검증할때도 현대차가 내놓은 코스트저항 값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5000억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을 내는게 바로 이 코스트저항 값이 '다르게' 됐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가 내놓은 저항값은 현대차 사내 테스트 서킷에서 측정한 것인데, 실제 도로에서는 그보다 훨씬 거친 노면이어서 그런 '매끄러운' 노면 저항값은 절대로 재현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아직도 현대차 서킷에서 잰 기록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으니 '틀린것'은 아니지만 옳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형 쏘나타(LF)의 랜더링 이미지. 실제차가 이런 느낌이 나는건 아닙니다.
- LF, '신형 쏘나타'라 할 만 한가
이번 보도도 그랬지만 로이터 통신등 해외 언론들은 신형 쏘나타에 대해 'new'라는 표현보다 'restyle model'이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영어권이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뉘앙스가 페이스리프트에 가까운 표현인 것 같습니다.
보통 신차가 나오는 주기는 6-7년 정도 되는데 쏘나타는 2009년에 나왔으니 이제 5년 된겁니다. 신차가 나오기는 좀 이르죠. 로이터 통신 같은 해외 언론에서는 최근 쏘나타의 인기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이를 반전하기 위한 카드로 쏘나타의 디자인을 변경해서 내놓은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연비도 크게 개량되지 않고 엔진이나 변속기 같은 파워트레인도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있던 터보를 빼고 기존 YF에 있던 2.4 엔진을 다시 집어 넣었습니다. 복고적인 파워트레인 구성입니다. 그래서 아마 새로운 차라는 느낌을 못주고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중국산 밍투를 한국에 파는건 아닌가라는 얘기도 있긴 합니다. 신형 쏘나타의 디자인은 그동안 중국에 팔던 밍투(미스트라)와 비슷하게 생겨서 사실 기자들도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밍투는 쏘나타는 아니고 i40 세단의 중국형입니다. 그런데 신형 쏘나타는 기존 쏘나타에 비해서도 휠베이스가 늘어났으니 밍투와 같은 차는 분명 아닙니다.
- 사과문은 왜 2시 50분에 나왔나
연비가 틀려서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기자들에게 배포한 시간은 오후 2시 50분입니다. 증권사 장 마감시간을 단 10분 앞두고 배포된 것이어서 기자들 중 누구도 이걸 받아적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가장 빨리 쓴 편인데, 전화 인터뷰 등을 붙여서 3시 10분에 올렸습니다.
주식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현대차 주가는 지난 3월 6일부터 빠지기 시작해서 17일까지 줄곧 하락해왔습니다. 사과문마저 주식시장을 염두에 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날 현대차 주가는 정말 간만에 반등했고 2.2% 오른 것으로 장 마감이 됐습니다. 어쨌건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가 차를 정식 시판하기 전에 문제점을 밝혔으므로 이번 실수가 주가에 미치는 충격은 단기적일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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