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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1억원 이상

포르쉐 카이엔 터보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Porsche Cayenne Turbo)

지난 11일 출시한 카이엔을 보면서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최강의 드래곤, 나이트 퓨어리(Night fury) 가 떠오른건 저 뿐일까요?

치열한 드래곤의 세계 꼭대기에 나이트퓨어리가 자리한 것이 당연하듯, SUV의 세계에선 포르쉐 카이엔 터보가 꼭대기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나이트 퓨어리


포르쉐 카이엔. 나이트 퓨어리와 여러가지 면에서 닮았다.

카이엔 터보는 가격부터 최소한 1억7천만원으로 경쟁모델인 BMW X5나, 메르세데스-벤츠 M클래스를 훌쩍 넘어버립니다. 성능은 말할 것도 없고, 브랜드 가치도 두말 할 것 없이 한 단계 위죠.

4.8리터 V8 엔진은 그 배기량만 해도 대단한데, 트윈 터보까지 장착해 500마력이 됐습니다. 터보 덕분에 토크도 71.4kg·m에 달합니다. 가속력에서 자연흡기 6.2리터로 510마력을 내는 ML63AMG(토크 64.2kg·m)를 따돌립니다.

시승하는 입장에서도 이렇게 강력한 차를 마주하면 매번 떨립니다. 500마력이 넘는 무시무시한 녀석을 타고 잘 달릴 수 있을지 무서운거죠.

속속들이 살펴보렵니다


도로를 제압하는 광기, 압도되다

자유로에는 때 마침 여러 차들이 나란히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속도계를 얼핏 보니 차들은 대부분 시속 150km로 달립니다. 그 가운데는 귀여운 여성 운전자가 모는 노란 포르쉐 박스터도 있었습니다.

꽤 빠른 속도라고 생각했는데 변속기는 8단으로 올라왔고, 엔진은 불과 1500RPM에 조용히 머뭅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는 잠시 주변을 즐길까 생각하다, 이내 이 평화로움이 지겹다고 느껴진듯 변덕을 부립니다.

가속페달을 약간 밟았을까. 포르쉐는 길을 비키라고 우렁차게 호령합니다. 저음의 사운드가 도로 전체에 메아리 칩니다. 도로가 온통 공포에 휩싸이는 듯 합니다.

불과 10초 남짓, 카이엔 터보는 시속 250km에 도달합니다. 아직도 가속 여력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달리던 차들은 얼어붙은 듯 시속 150km의 속도로 멀어집니다. 따지고 보면 주차돼 있는 차들 사이를 150km로 맹렬하게 달려가는 셈입니다. 예의 노란 포르쉐 박스터는 경외의 눈초리로 쳐다볼 뿐입니다.


처음엔 귀엽다고 여겼던 카이엔 터보의 눈빛은 이제 악마처럼 희번뜩거립니다. 물론 날렵하게 도로를 누빌 수 있는 포르쉐 911도 빠르지만, 2.1톤이 넘는 덩치가 4.7초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힘에서 눌러버리는 위압감과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




이번 카이엔, 얼마나 '포르쉐'일까?

최근 독일 메이커들은 일제히 '부드러운 차'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강력하고 튼튼하지만 일반인들이 다루기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더 잘 팔기 위해서죠.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폭스바겐 등이 내놓는 차를 보면 이게 독일차 맞나 싶어 약간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새로 등장한 카이엔은 얼마나 포르쉐 다움을 갖고 있을지 우려가 됐습니다. 처음엔 포르쉐 팬으로서, 이 차가 과연 제대로 만들어 졌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안고 포르쉐에 올랐습니다.


차를 달려보니 역시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포르쉐는 주행에 있어 단 한번도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세히 보면 전면은 이전 카이엔보다 훨씬 '포르쉐 라인'에 가깝습니다. 헤드램프도 둥근 형태에 가까워졌고, 과격했던 박스 스타일의 보닛이나 테일램프도 곡선을 넣어 날렵해졌습니다. 차가 작고 스포티해 보인다는 것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카이엔의 덩치가 끼어들면 흠칫 놀라 길을 비켜주던 한국 운전자들도 이 차 뒷모습에는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건 이전 이질적이었던 카이엔에 비해 전통적인 포르쉐 이미지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시동키가 이전 포르쉐와 달리 스마트키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포르쉐 특유의 왼손으로 꽂아서 돌리는 방식은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버튼식 스마트키보다 꽂아 돌리는 것이 더 신선하게 여겨집니다.

시동을 걸어보니 "그르릉"하는 우렁찬 '소리'가 정말, 대단히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입니다. 포르쉐 V8 엔진에 대한 우려를 씻어주는 듯 합니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이번 포르쉐는 이전에 비해 부드러워졌다는 것이 바로 느껴집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훨씬 잘 달린다

그 거대하고 과격하던 포르쉐 카이엔 터보가 훨씬 날씬해졌습니다. 실제는 크기가 조금 더 커졌지만 겉 모양이 변경돼 이전보다 월등히 날렵하게 변한겁니다.

몸무게도 무려 183kg이나 가벼워지고 연비도 무려 23%나 향상됐습니다. 그러면서도 파워는 오히려 강력해졌습니다. 한때 인기를 끌던 장끌로드반담이 이소룡이 된 느낌입니다. (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예를 들어 죄송합니다. ) 무게가 가벼워진 것은 엔진 등 부품뿐 아니라 빈 프레임이 111kg이나 가벼워진 덕분입니다. 비틀림 강성등은 더 높이면서도 무게를 줄인 것은 프레임의 설계나 고장력 강판을 효과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겠죠.


이전의 5단이던 변속기는 8단으로 늘어났고, 과격했던 것이 모두 세밀하게 가다듬어졌습니다. 다른 포르쉐는 모두 2단에서 출발하지만 카이엔은 1단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포르쉐 다른 차량과 달리 변속 시점이 미묘하게 이르기 때문에, 엔진 브레이크가 좀체 걸리지 않는건 포르쉐 답지 않습니다. 조금 달려볼 양이면 스포츠모드를 이용하는게 바람직 합니다. 고속도로에 오르면 순항 모드인 7단과 8단에 쉽게 돌입합니다. 고속으로 달리는데 RPM이 1500수준에 조용하게 머무는건 참 특이한 경험입니다. 연비도 높아지겠죠.


오프로드도 막강…믿을 수 없을 정도

이 차의 4륜구동은 저속기어(Reduction gear)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조금(33kg) 가벼워졌습니다.

그렇지만 4륜 디퍼런셜 록 기능을 세팅하고, 엑티브서스펜션으로 차체를 15cm가량 높이면 어떤 오프로드 산도 우습게 넘을 정도의 성능을 보여줍니다. 



최근 전자제어 상시4륜구동이 유행하면서 원가절감과 연비 개선 등을 이유로 4륜 디퍼런셜록을 제거한 SUV들이 날로 늘고 있는데, 이 차들은 오프로드 주행은 포기하는 셈이죠. 반면 카이엔은 오프로드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합니다.

온로드 전용타이어로는 이런데 못 올라갈거야. 천만의 말씀. 포르쉐 카이엔이라면 어디든 간다.


그러던 4륜구동 장치는 온로드로 내려오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속에서도 막강한 성능을 보여줍니다. 뉴트럴을 기본으로 약간 오버스티어를 일으킬 수 있도록 세팅한 것은 영락없는 후륜구동 스포츠카의 몸놀림입니다.

4륜구동과 세트를 이룬 PTV plus(포르쉐 토크 벡터링 플러스)덕분입니다. 이 장치는 온로드에서 후륜에 구동력 배분 기능과 전자 제어 디퍼런셜을 이용해 코너 바깥쪽에 더 큰 구동력을 배분해 회두성을 높입니다. 오프로드에서는 전용 프로그램으로 후륜이 트랙션을 잃는 것을 막도록 돼 있습니다.

굽은 산길을 마구 달려봅니다. 버튼을 눌러 스포츠모드를 작동시키고 레버를 조절해 차고를 낮춥니다. 그래도 승차감이 비교적 부드럽고 잔 충격을 모두 흡수해주면서도 기울어짐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카이엔은 어떤 의미

포르쉐가 SUV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불만도 많았지만, 카이엔은 오늘날의 포르쉐를 만든 핵심 모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색을 버리고 그저 돈이 된다고 해서 마구 만든게 아니라, SUV에 있어서도 포르쉐의 색깔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또, 포르쉐가 아니면 그 어떤 브랜드가 이렇게 대담하고 멋진 차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 세부사양

엔진: V8 트윈 터보 500마력
0-100km/h가속 : 4.7초
최고속도: 278km/h
연비: 11.5L/100km
무게 :2170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