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의 'E타입' 또한 참신한 스타일링과 모노코크라는 획기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2대 한정 생산한 알루미늄 바디, 알루미늄 엔진의 '라이트웨이트 E타입'은 오늘날 XK의 시조라 할 수 있다. 물론 당시는 메르세데스벤츠 300SL, 애쉬턴마틴DB4, 페라리250GT 등 이름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스포츠카들의 전성기이기도 했지만 재규어는 가볍고 손에 닿을 수 있는 가격으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사람이 해가 갈 수록 연륜이 더해지듯, 차량도 해가 갈 수록 뭔가 발전 해 가기 마련이다. 59년의 역사가 빚은 최신 스포츠쿠페. XK를 만나봤다.
알루미늄은 생산 공정 제작 비용이 월등히 많이 들기 때문에 XK같은 소량 생산 모델에 알루미늄을 채택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재규어의 최고급 모델은 알루미늄 외장을 100% 적용해 4.2리터 엔진을 얹고도 차체 무게는 1650kg에 머무르게 했다. 알루미늄이라 수리시 용접이 불가능하지만, 용접 대신 리벳을 이용하는 방식은 수리 공정을 신속하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장점도 있다. 디자인은 역사적인 재규어의 E타입과 무척 많이 닮아있다. 클래식한 형태의 그릴이나, 실내의 우드며 좌우로 곧게 이어지는 대쉬보드 패널의 디자인이 무척 고전적이다.
디자인 & 실내 재규어XK의 실루엣은 무척 독특하다. 이 차를 몰던 며칠간은 주변에 내가 탄 차와 그림자 조차 비슷한 차도 없었다. 유니크하다는 뿌듯함,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에 짜릿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매력적이면서 독특한 실루엣은 제임스본드가 타던 애쉬턴 마틴을 닮았다. 본드걸이 반할만한 날렵한 근육질이면서도 나비넥타이 정장을 입고 운전해도 잘 어울리는 점잖음이 배어 있는 것이다. 포르쉐라면 옆자리에 숏커트 헤어에 미니스커트의 발랄한 여성이 앉는 것이 어울리겠지만, XK의 옆좌석에는 우아한 드레스의 여성이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꼼꼼히 차의 디자인을 훑어본다. 본닛의 최첨단에 붙어있는 작은 그릴은 59년전 유행하던 경주차들의 디자인 콘셉트를 그대로 따왔다. 사이드 윈도우 라인을 감싼 몰딩은 클래식한 느낌이면서 실루엣을 부각해 차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한다. 차의 뒷부분으로 흐르는 라인에서 감동이 극에 달한다. 곡선만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이는 차는 없었다. 쿠페의 커다란 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서면 벤틀리의 실내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좌우로 길게 뻗은 대시보드는 베이지색 가죽에 촘촘한 박음질로 마무리해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반짝거리는 우드트림은 적절한 색상과 광택으로 중용의 미를 표현한다. 핸들에 붙은 오디오 조절레버도, 시가잭도 모두 금속제로 만들어져 반짝이는데 역시 다른 차에서 찾기 힘든 대단한 사치다. 이렇게 화려하면서도 튀지 않고 전체가 어울어지도록 만드는 디자인 감각이 놀랍다. 이 차를 처음타면 도어록을 푸는 버튼을 찾을 수가 없다. 크롬으로 반짝이는 도어 손잡이가 반쯤 눌려 있으면 잠기고 반쯤 당기면 록이 풀리는 구조다. 메르세데스벤츠 마냥 전동 시트를 조절하는 버튼들이 문에 붙어있는데, 특이한 점은 공기 주입식 사이드 서포트의 조임을 조절하는 레버가 달렸다는 점이다. 사이드 서포트를 높이면 상당한 수준의 버킷시트가 되고, 체격에 따라 편안하게 풀어줄 수 있도록 했다. 기어노브는 위치가 좋지만 덜컥 거리는 절도 있는 동작이 아니라, 동작이 크고 클래식한 느낌이다. L게이트를 적용해 맨 아래로 내려 왼편으로 옮기면 보다 강력한 토크를 일으키는 DS모드로 전환하여 더욱 스포티한 주행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XJ등 과거의 재규어는 게이트가 J형으로 구성되어 왼편으로 옮긴 후 수동 조절이 가능하게 했는데, L모양의 게이트로 바꾼 이유는 팁트로닉을 적용하기 위해서다. D모드건 DS모드건 핸들 뒷편에 숨겨진 팁트로닉 레버를 당기면 즉시 원하는 기어 단수로 셋팅된다. 실내 대부분 스위치를 없애고 센터페이시아의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조절하도록 했다. 특히 시트 열선이나 핸들 열선 등 기본적인 기능도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다.
304마력에 42.9kgm의 토크, 6단 AT가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순식간에 제한속도 250km/h에 이른다. 이 차는 엔진룸 한 가득 4.2리터 엔진을 싣고도 밸런스가 절묘해 코너웍이 좋다. 서스펜션은 노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고급스러운 주행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파른 와인딩 로드를 쏠림 없이 빠져 나간다. 두마리 토끼를 잡는 놀라운 재주다.
편안한 스포츠카를 타보니 XK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달려주지만, 차 자체를 운전하는 것에 몰두해야 하는 거친 스포츠카의 주행감은 아니다. 포르쉐를 서있어도 박진감이 넘치는 차라고 한다면, 이 차는 편안하고 넉넉하게 달리는 와중에 속도계가 어느새 시속 200km를 훌쩍 넘어가버리는 타입이다. 이 차는 용광로 같이 발끈하는 차가 아니고 오랜 연륜과 뛰어난 드라이빙 실력으로 옆좌석 승객까지 배려하는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차다.
패키징: ★★★★★ 엔진성능: ★★★★★ 조향성능: ★★★★ 차량중량 : 1,690kg |
l 카리뷰-김한용기자whynot@chosun.coml 2007.01.12 12:02 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