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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 건물 위주서 도로 위주로 바뀌어야

퀵서비스 아저씨에게 설명한다. "시청에서 남대문 방향 오시다보면 삼성본관 있는데, 거기 건너편에 1층에 엘지텔레콤 폰엔펀이라고 녹색 가게가 있어요. 거기 4층입니다."

 

삼성본관, 교보생명 사거리, 흥국생명사거리, 뱅뱅사거리...

 

이런 위치를 처음 듣는 사람이 지도에서 이 사거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 차가 거의 없던 시절, 보행자는 자신이 찾아가는 건물을 설명하면 되었기 때문에 도로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강 다리 이름부터 제1한강교, 제2한강교... 하는 식으로 소수의 운전자들만 기억할 수 있을만큼 복잡했다.

 

그러나 미국이나 캐나다 등 일찌감치 차가 보급된 나라에서 운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리의 이름으로 길을 찾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 나라들은 사거리 표지판에 사거리 이름은 적지 않는 경우가 있어도 교차되는 양쪽 거리의 이름은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웨스트민스터길에서 랍슨길 방향 좌회전" 하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교보생명 사거리에서 한남대교 방면으로 가다가 왼편에 쌤소나이트가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 하는 식으로 모호하게 설명될 수 밖에 없다.

 

'길'은 길게 이어져 있어 한번 놓쳐도 다시 탈 수 있지만, 사거리는 한번 지나치면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오기 전엔 도무지 융통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설명 받은 요소중 한개라도 모르면 거리를 마냥 헤메게 될 수도 있다.

 

사거리 이름을 외우는 것이 길 이름을 외우는 것에 비해 어려운 이유는 뭘까.

 

만약 도시에 길이 가로로 10개, 세로로 10개 있다면 길은 총 20개다. 그러나 각각의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는 무려 100개가 만들어진다.

 

만일 4거리 이름을 적는 대신 길 이름을 적는다면 5배 이상 덜 혼동하게 되고 길을 잃고 헤메는 수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