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만화에 2대 사도로 나오고, 모나리자로 표현하기도 했던
샤또 빨메 (Chateu Palmer) 1999
바로 그 와인이다.
누구에게나 무엇에든 '첫 경험'이라는 것이 있고 그건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먹는 샤또 팔메. 난 감동을 깊이 느끼고,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난 이미 와인을 한병 가량 먹고 온 상태.
몸 상태가 이 와인의 미묘한 떨림을 온전히 느끼기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첫 경험'을 이렇게 정신없이 흘려 버린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런 엄청난 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느낌이었고, 와인을 선뜻 따준 '불꽃남자'한테도 미안했다.
그저 내 모든 감각을 집중 시켜보는 수 밖에...
어느새 길다란 리델 글라스에 와인이 부어졌다.
아앗. 와인에서 이런 향이 날 수가!
풍선껌 같은 향이 마구 퍼진다. 자연에서 이런 향이 나올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와인잔을 돌려본다.
향을 좀 더 맡으니 처음보다는 스모키한 향으로 변한다.
와인잔 주변에는 '천사의 눈물'이 흘러내리지도 않는채 끈적하게 들러 붙는다.
이대로 정신없이 '첫 경험'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잔을 그대로 내려놨다.
도무지 마실 수가 없다.
옆에서 어서 마셔보라고 부추긴다.
심호흡을 해본다. 하긴, 그래봐야 그저 와인일 뿐이잖아.
눈 딱 감고 한입을 머금자 입안에서, 코에서, 혀에서, 온갖 감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소용돌이친다.
공룡이 밟고 지나가는 듯, 강력한 펀치가 사방에서 들어와 황홀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
좀 더 집중해서 다시 맛을 본다.
샤또 빨메의 첫 맛은 메를로가 한 몫한다.
프레시한 미디엄바디에 탄닌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혀끝에는 액체가 닿은 느낌조차 없이 우아하게 사라지는 듯 하다.
그 가운데 느껴지는 카베르네쇼비뇽의 색깔, 절묘한 섞임이 풍부한 맛을 뿜어내는데, 오크통의 향기까지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잠시 둔다. 끝없이 이어지는 향기가 점점 농후하게 변한다.
이거 놔두면 더 열릴수도 있겠다.
시간이 새벽 2시.
더 열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겠지... 이대로도 좋은걸.
아아 안타깝게도 어느새 한병이 비워지고...
빨메를 마신 첫경험은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 버렸지만,
강렬한 기억은 다음날에도 그대로 입안에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샤또 빨메 1999의 가격은 3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