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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와 땀이 여기에

GM대우 충남 보령 6단 자동변속기 생산 공장을 다녀오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기술이 그저 GM대우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단 자동변속기 생산이라는 것이 말이 쉽지 엄청난 기술입니다. 특히 전륜구동용 6단 자동변속기를 만드는 업체는 더 흔치 않습니다.

국내 최초로 중형차에 자동 변속기를 장착했을 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국내 기술자들이 6단 변속기를 생산하게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합니다.

현대·기아차가 내놓은 6단 변속기 차량은 제네시스, 모하비, 베라크루즈 등 3개 차종이 있지만, 이들 차종은 모두 일본산 혹은 독일산 변속기를 채용한 제품으로, 완성된 변속기를 국내에 들여와 국내 기술진이 장착만 하는 것입니다. 기술 계약 조건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는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대차도 최근 자체 6단 미션을 개발하고 있지만, 특허 문제를 피해가기가 쉽지 않아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입니다.

그런데 어떤일인지 요즘 현대차측은 "6단 자동 변속기는 토크가 큰 대형차에서나 사용하는 것"이며 "중형차에 6단 자동 변속기를 이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중형차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BMW의 경우 소형인 1시리즈, 준중형인 3시리즈를 포함한 전 차종이 6단 자동 변속기를 이용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C클래스를 포함한 대부분 차량에 7단 변속기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도 1500만원짜리 래빗(Rabbit)을 비롯해 전 차종에 6단 변속기가 기본, 경우에 따라 6단 DSG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렉서스 소형차 IS250을 비롯 대부분 차종은 6단입니다. 인피니티 전차종은 5단 자동이지만, 이는 닛산의 자회사 자트코(JATCO)가 아직 마땅한 6단 자동 변속기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QM5에 자트코 6단 자동변속기가 내장됐지만, 허용 토크가 낮아 인피니티 차종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수입차 중에도 푸조 등의 일부 차종은 4단기어를 채택하기도 합니다. 푸조는 변속기를 독일에서 전량 수입하는 업체이기 때문에 차량 가격에 따라 저렴한 변속기를 장착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사실 수입차 중엔 4단 변속기를 이용하는 차량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운 셈입니다. 4단 변속기를 채택하는 차는 차의 크기와 관계 있는 것이 아니고 가격과 관계 있는 것이기 때문에, 4단 변속기를 장착한 차는 저가 모델임을 자인하는 셈입니다.

사실 이번 GM대우의 6단 변속기도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GM대우측에 따르면 "한국 GM대우에서 벤치마킹 등을 한 결과물을 토대로 GM 본사가 제품을 설계, 한국에서 상용 제작 및 테스트를 거쳤다"고 합니다. 요는 주요 기술이 들어가는 부분을 대부분 미국에서 제작 했다는 것입니다.

토스카 프리미엄6에 장착되는 이 변속기는 외국차종에도 장착될 예정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GM의 글로벌 생산 기지로 GM대우 보령 공장이 채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변속기 자체 생산은 고용창출의 효과는 물론 유무형의 기술력을 국내 기술진들이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6단 하이드로매틱 변속기 단면

   

▲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과 뒷좌석에 앉은 직원들


 

공장을 직접 돌아보고 여러가지로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공정이 무인으로 이뤄지는 이 공장은 너무 깨끗해서 독일 드레스덴의 페이톤 전용 유리공장을 연상케 했습니다. 공장이 복층 구조로 만들어져 부품이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천정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천정위를 돌아다니는 변속기 부품들


그러나 견학 프로세스는 특이했습니다.

현대 기아차는 공장 견학의 프로세스가 잘 마련돼 있어서 견학용 이어폰을 끼고 걸으면 공장의 각 프로세스를 자동으로 설명해주는 기능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기능은 없었고 공장의 관계자가 확성기를 매고 시끄러운 와중에 설명을 해보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현대 기아차 공장은 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카메라를 압수하고 관람객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통제했지만, 이곳에선 촬영을 해도 누구하나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중요한 버튼이 있는 곳까지 가서 만지작 거려도 누구하나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관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공장을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분명 훌륭한 공장에 훌륭한 기술력이지만, 비운의 시련을 겪은 GM대우가 이제 더 이상 한국 기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저 재주만 넘는 곰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됐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장 처음으로 6단 자동변속기를 생산했다는 점은 누가 뭐라 해도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기술의 발전만이 한국을 세계 으뜸가는 나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령공장에는 이미 수천개의 변속기가 만들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 중 유별난 한대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기 전시된 제품이 뭔지를 묻는 질문에 GM대우 측 직원은 눈을 반짝거리며 답했습니다. 얘기인 즉, 수많은 시행착오와 갖은 고생 끝에 작년 11월 6일, 최초의 제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들은 그 제품을 차에 장착하지 않고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 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당시 임직원들의 사인이 가득한 저 변속기가 탄생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과연 변속기에는 빼곡하게 여러 직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천천히 이름들을 살펴보던 중 저 문장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그 노력이 눈에 보이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기술 개발에 불철주야 노력하는 우리 산업 역군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흘린 피 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