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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서고, 알아서 달리는 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앗!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내가 탄 차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아우토반을 시속 1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잠이 들려는 찰라, 별안간 운전 기사가 패달에서 두발을 모두 떼더니 아예 양반다리로 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비록 아우토반이라고는 하지만, 차 앞 뒤로 온갖 차들이 즐비했다. 당장이라도 사고가 일어날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도 독일인 운전 기사는 양반다리를 한 채 즐겁게 웃으며 차 사이를 누빈다.


웃으며 뭐라 독일 말을 해대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고 긴장만 더할 뿐이다.


운전자가 두발을 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점차 스스로 가속을 하더니 계기판 속도계는 벌써 200km/h의 초고속에 이르렀다.


꿈을 꾼 것이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스트로닉 플러스라는 기능이었다.


자동차와 전자장비가 섞이는 세상

독일선 이런 운전 방식이 이미 현실에 와 있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국의 운전 풍경도 많이 변했다. 요즘은 부지불식간에 차들에 디지털
화가 이뤄져 신차들은 운전자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브레이크가 잠기지 않도록 펌핑(Pumping)을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장애물을 회피하려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핸들 조작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최근 ABS(Anti Brake-Lock System)가 장착된 차량은 전자장비가 개입되어 브레이크를 힘껏 밟는 동안에도 1초에도 수십번씩 브레이크를 놓았다 풀었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무조건 브레이크를 세게 밟는 것이 위기 탈출을 위해 바람직하다.


몇몇 수입차들은 엑셀에서 발을 급속히 떼면 급브레이크를 사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로 브레이크의 압력을 높여 브레이크 작동시 보다 민첩하게 대처하도록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엑셀을 밟는 경우도 전자 장비가 개입되기는 마찬가지다.


TCS나 ESC, ESP, VDC 등 업체들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이런 시스템들은 모두 차량 내의 컴퓨터가 판단하기에 운전자가 엑셀을 지나치게 밟았다는 판단이 들면 작동되는 일련의 동작을 갖춘 시스템이다.


즉, 타이어의 미끄러짐을 감지하는 즉시 차가 스스로 엔진의 출력을 줄인 후 자동으로 ABS가 동작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국산차에도 고급 모델을 중심으로 이런 시스템이 장착 되어 있다.


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2004년 BMW 5시리즈를 시작으로 BMW 신차종은 속속 엑티브 스티어링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들 시스템은 더 기가 막히다.


차량내 컴퓨터가 판단하기에 운전자가 핸들을 잘못돌려 차량이 미끄러진다면, 전자모터가 작동해 -운전자가 핸들을 어떻게 돌렸든 간에- 즉시 앞바퀴의 각도를 줄이거나 늘려 차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다.


이 엑티브 스티어링 기능은 주차시나 저속 주행시 약간의 조작으로도 앞바퀴가 크게 움직이도록 한다. 좁은 공간에서도 쉽게 회전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편리하다.


반면 고속주행시에는 스티어링을 조금 더 돌려도 앞바퀴가 적게 움직여 보다 세밀한 조정이 가능하게 한다.


액티브스티어링 - 저속시


액티브스티어링 - 고속시


사고율도 줄고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운전자로서야 핸들과 바퀴가 생각한 바와 다르게 움직이고, 또 엑셀이나 브레이크 또한 기계가 맘대로 끼어든다는 점이 섭섭하기도 하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첨단화

과거 메르세데스-벤츠는 일본메이커들이나 BMW 등의 경쟁사가 이처럼 전자 장비로 무장을 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그저 뛰어난 엔진을 갖춘 우직한 차를 만들어왔다.


후발 주자들의 전자장비를 하찮게 여겼을 것이고, 고급차 시장은 경쟁자 없는 자신들의 텃밭이라고만 생각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놀랄만치 조용한 렉서스에 호감을 보였고, 점차 늘어가는 BMW의 첨단 장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90년대 말 메르세데스벤츠는 북미시장서 렉서스에 중가 시장을 내주고, BMW에는 고가 시장마저 내주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는 주행성능이 뛰어나고 고급스러움을 갖췄지만, "평범하고 개성이 없으며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BMW는 나이가 많은 사람뿐 아니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차로도 자리매김 했지만, 메르세데스-벤츠는 나이가 많은 사람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수익성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고가 차량의 판매량은 렉서스 > BMW > 메르세데스 순으로 개편이 되고 말았다.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일본차를 비웃다 시장 전체를 고스란히 내준 것과 마찬가지로, 경쟁사 없는 자신만의 텃밭이라 생각했던 고급차 시장에서 보기 좋게 참패한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기함(Flag Ship)모델인 S클래스부터 첨단화 하기로 했다.


S클래스의 전체적인 스타일을 결정하는 책임자인 헬무트 그로서(Helmut Groesser)박사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가장 큰 문제는 디자인'이라며 새로운 S클래스는 디자인부터 새롭게 했다.


그는 "S클래스는 기본적으로 안락성과 역동성, 고유한 디자인 등 3가지 핵심조건을 중심으로 개발되는데, 이 요소들의 상당 부분이 고객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고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디자인 했다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요구는 다양했다. 아시아의 소비자들은 덩치가 큰 차를 선호했고, 반면 유럽의 소비자들은 스포츠카처럼 날렵한 차를 원했다. 소비자 요구에 따르면, 개성이 있어야 하는 반면 품위도 잃지 말아야 했다. 근육질이 있어야 했으며 또한 단순해야 했다.


그 결과 커다란 헤드램프가 날렵한 모습으로 박혀있고, 커보이지 않으면서도 길이가 5미터가 넘는데다 근육질이 숨겨지게 되었다.



메르세데스-벤츠측이 생각한 또 다른 카드는 차량의 디지털화,첨단화였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장비들을 메르세데스-벤츠는 적극 도입하는데 앞장섰다.


2005년, 디터 제체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이 내놓은 새로운 S클래스는 ‘최첨단 리무진’이라고 부르는데 손색이 없었다.


새로운 S클래스의 최첨단 기능 중 가장 획기적인 것은 프리세이프(Pre-safe)기능의 확장인 디스트로닉 플러스(Distornic Plus)와 브레이크 어시스트 플러스(Brake Assist Plus), 그리고 나이트 뷰 어시스턴스(Night View Assistance) 기능 등이다.


기존 모델부터 도입된 프리세이프 기능은 사고 발생 직전 순식간에 창문과 선루프를 닫고 시트를 자동으로 안전한 위치로 이동시키고, 안전벨트를 팽팽하게 한다는 것. 직접 테스트 해 볼 수는 없어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팜플렛에 표시된 대로만 동작해준다면 안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급 모델인 S클래스의 앞부분을 유심히 보면 전면부 그릴 가운데 그릴 무늬의 플라스틱 판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전파 레이더의 송수신부다. 이 차는 시동이 걸린 순간부터 레이더를 이용해 앞차와 거리를 끊임없이 측정하도록 되어있다.


'크루즈 컨트롤'이라는 기능은 미국의 끝없는 도로에서 시속 60마일 정도를 설정해놓고 몇시간이고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기능으로 생각하기 쉽다. 한국땅에서는 무용지물인 바로 그 장비.


그러나 디스트로닉 플러스라고 부르는 시스템은 S클래스에 장착된 전파레이더로 전방의 자동차와의 거리를 감지하고 앞차와의 간격을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크루즈 컨트롤이다.


차가 달릴 최고 속도와 앞차와의 거리만 지정하면, 즉시 앞차와 정해진 거리가 될 만큼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 시스템이 낼 수 있는 최고속도는 시속 200킬로미터에 달한다.


중간에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앞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경우가 생겨도 아무 걱정이 없다.


앞차가 속도를 줄이거나 정지하면 이 차도 자동으로 속도를 줄이거나 정지하고, 만일 위급한 경우도 사람이 밟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아주기도 한다. 앞차가 옆으로 비키거나 소통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가속이 시작된다.


실제 아우토반에서 몇 일 사용해보았지만, 내가 운전하는 것보다 차가 훨씬 잘해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체 발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크루즈컨트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 차는 항상 전면의 장애물을 감시하도록 되어있다. 만일 도로 수백미터 앞에 멈춰선 차가 있다면 그것을 레이더로 발견하고 즉시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칠흑 같은 밤이나 안개속에 차들이 멈춰서 있는 경우, 운전자가 알기 전에 차가 미리 경고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운전자가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차는 스스로 브레이킹을 한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쯤 되면 운전자가 굳이 다른 차를 들이받겠다고 덤벼도 차가 스스로 멈춰 버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차가 아니라 로봇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사실 이러한 레이더를 사용하는 옵션들은 아직 법규상의 이유로 국내 정식 수입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안전을 위한 장비이니만큼 조속히 허가가 나길 기대해본다.


눈으로 본 바깥 모습

나이트뷰로 보니 사람이 보인다.

국내 정식 수입되는 기능 중엔 나이트뷰 어시스턴스(Night view assistance)라는 기능이 있는데, 이 또한 놀랍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은 맞은편 운전자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 강하게 비추지 못한다. 반면 적외선의 밝기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이 차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적외선을 쏘고 모니터에 적외선 카메라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나이트 뷰 어시스턴스의 영상은 일반적으로 속도계가 비춰지는 모니터에 등장한다.


나이트 뷰 어시스턴스를 보면서 운전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검정 옷을 입은 인물 등도 흰색으로 밝게 나타나기 때문에, 캄캄한 길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장애물 정도는 눈치 챌 수 있다.


아우토반을 포함한 독일 대부분 도로에는 기본적으로는 한국과 같은 가로등이 없고, 시야는 항상 헤드라이트에 의지해야 한다. 때문에, 독일에서 이 시스템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큰 활약을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는 전자 속도계로 상징되는 최첨단 수퍼 리무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전자 속도계가 디지털 숫자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바늘을 그래픽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디지털로 똘똘 뭉친 차이면서도, 운전자나 승객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이미지를 전달하도록 했다.


2005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출시 후로 메르세데스-벤츠가 나이든 사람이나 타는 차라는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럭셔리카에서 쌓은 첨단 이미지는 중형차, 소형차판매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2005년 연간 판매 자료를 보면, 독일시장서 BMW는 29만5천885대를 기록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35만5천 대로 메르세데스-벤츠가 앞선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미국시장서는 BMW는 30만7천395대, 메르세데스-벤츠는 22만4천 대로 BMW가 다소 앞서 있지만, 2006년 자료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월 2만2천대 수준, BMW가 월 2만대 수준으로 역전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동전의 양면과 같던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를 한대의 차에서 해내겠다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실현했고, 바로 그 혁신이 시장 판매량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