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쿠페는 현대차가 '정통 스포츠카'를 표방하고 만든차다. 후륜구동 베이스로 기존 티뷰론이나 투스카니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과연 스펙으로 놓고 보면 상당한 수준이다. '200 터보' 모델의 경우 2.0리터 터보엔진으로 210마력을 낸다. 주행재미(Fun to Drive)의 대명사격인 골프 GTI나 새로나온 아우디 A3를 뛰어넘는 엔진 힘이다.
'380 GT'모델의 엔진의 경우 303마력으로 혼다 레전드(300마력)을 뛰어넘고 인피니티 G37쿠페(333마력)등을 경쟁상대로 삼는다고 현대차 측은 밝혔다.
튜닝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브렘보 브레이크를 장착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19인치 휠에 52:48이라는 무게 배분도 기대감을 높인다. 게다가 가격은 경쟁차종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니, 현대차 말대로라면 국내 수입차들은 모두 두손을 번쩍 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됐다.
과연 현대차가 공개한 스펙만큼 뛰어난 감성 품질과 주행성능을 가졌는지 3.8GT모델을 직접 시승하며 확인해 보았다.
◆ 디자인 … 실외는 만족, 실내는 수준이하
외부 디자인은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들었다. 시승하는 중간에도 주변의 젊은이들이 계속 흘깃거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
러나 실내 마감은 깜짝 놀랄만큼 수준이 떨어졌다.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로 인해 3천만원대 자동차의 실내라고 믿기 어려웠다.
핸들도 가죽 흉내를 낸 PVC 재질로 땀이나면 미끄러질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는 그동안 다른것은 몰라도 인테리어는 좋다는 평을
들어왔는데, 어째서 이런 재료를 이용해 실내를 마감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기반 위에 있는 패널은 제대로 고정이 안된듯 손으로 움직이자 위아래로 마구 흔들렸다.
이젠 필수가 된 내비게이션을 내장할 공간이 없다는 점도 이상한 일이다. 전면 유리가 누워있어 내비게이션을 전면 유리에 장착하면 시야가 상당히 가려질 듯 하다.
오디오 화면이나 계기반 트립컴퓨터에 켜지는 푸른 불빛은 신형 아반떼에 처음 사용된 그대로다. 많은 소비자들이 시안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아보니 다리 공간은 괜찮은 수준이지만, 머리 공간은 크게 부족해 인사하듯 몸을 굽혀야만 앉을 수 있었다.
세
미 버킷타입 운전석은 몸을 잡아주는 느낌이 있었다. 운전석쪽에는 전동시트가 있지만, 전후 슬라이드만 전동이고 뒤로 젖히는 기능은
수동이다. 돌리는 타입이 아닌 당기는 타입이어서 세밀한 조정은 힘든데다 주행중 오작동의 우려마저 있다. 그나마 조수석은 전후
슬라이드조차 전동이 아니다.
엔진 후드를 열어보니 엔진위로 전선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미완성된 차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트렁크 천정 쪽에는 우퍼스피커의 자석부분과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짐을 싣다가 달라붙거나 고장낼 우려도 있었다.
◆ 달리기 성능은 만족, 감성은 조금만 더
이 차는 스마트키와 버튼식 시동장치를 갖추고 있다. 버튼은 로체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낮은 곳에 있어 누르기 불편하다.
시
동 소리는 스포티하다기 보다 조용하다. 저속에서는 낮게 깔리는 배기음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엔진회전수(RPM)를 높일수록
고음으로 변해 정작 고속에선 경박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후면에서 보는 배기 파이프는 2개로 보이지만 모양만이고 정작 배기구
직전까지는 하나의 파이프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두개의 파이프가 내는 중후한 화음이 없는 것이다.
303마력의 V6
엔진은 부드럽고 ZF제 6단 변속기도 궁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다. 변속기에 스포츠 모드가 없어 수동 변속이 필수적인데,
패들시프트(핸들 주변 변속 버튼)가 없는 점은 아쉽다. 4단 변속기를 가진 패밀리 세단 ‘기아 로체’에도 패들시프트가 있는데,
정착 이 차에 없다니 이상한 일이다.
0-100km/h까지 6.5초라는데, 안정감 있는 주행감각에다 조용한 배기음 때문인지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속 패달을 밟으면 120km/h까지 쭈욱 밀어올리는 느낌이 좋다.
2.0리터 터보 모델은 8.5초, 상대적으로 둔하다는 느낌이 든다. 210마력은 나쁘지 않은 힘이지만, 공차중량이 1650kg 수준으로 지나치게 무거운 탓이다.
3.8리터 모델의 경우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계기반상으로 시속 240km에서 속도가 더 오르지 않는다. 이에 대해 현대차측은 속도제한기능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속 240km에 속도제한이 있는 차는 처음 보는 것이어서 의아했다.
◆ 코너링 뛰어나지만, 안정성·민첩성 아쉬워
이
차는 현대의 양산차 중 서스펜션이 가장 단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길다란 코너에서 노면을 추종하는 느낌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급코너에서도 코너를 쉽게 벗어나지 않고 안쪽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후륜구동 스포츠쿠페의 장점을 보여준다.
반면 핸들은 '속도 감응식' 이라는 기능이 무색하다. 저속에서는 핸들이 약간 묵직한 느낌이었는데 속도를 조금만 내도 지나치게 가볍고 헐렁해진다.
시
속 120km를 넘어도 엔진 소리가 크지 않아 안정감이 있지만, 핸들이 둔해 불안감이 상당하다. 노면에 요철이 조금 나타나자
차체가 노면에 붙는게 아니라 그립을 잃고 둥둥 떠가는 느낌이 든다. ‘노면따로 핸들따로’인 느낌이 여느 국산차와 큰 차이가 없다.
베
이스 모델인 제네시스와 마찬가지로 핸들링 유격이 있어 고속으로 코너를 돌 때는 한번의 '조타(操舵:steering)'로
빠져나가기 어렵고 핸들을 좌우로 움직이는 '보타'가 필수다. 현대차가 내세운 경쟁모델 '폭스바겐 골프 GTI'나 '인피니티
G37'의 예리함과는 아직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
제네시스를 베이스로 하다보니 축간거리(휠베이스)가 다른 쿠페형 차종에 비해 길다. 덕분에 직진 안정성은 뛰어나지만, 짧은 코너에서 추종하는 재미가 덜하다.
와인딩 로드를 들어가니 어지간한 길에서는 전자차체자세제어장치(VDC)의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깜박인다. 앞바퀴 타이어가 작아서인지 언더스티어가 심하게 나타났다.
◆ 브렘보 브레이크, 잘 서나?
튜닝업계에서도 수백만원을 들여 장착하는 고가 장비로 유명한 브렘보 브레이크는 왠일인지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
쓰비시 랜서에볼루션이나 폭스바겐 골프 R32 등 다른 수입차에 장착된 브렘보 브레이크는 지나치게 예리해 다루기 힘들
지경이었지만, 제네시스 쿠페의 브렘보 브레이크는 현대의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부드럽다. 과연 이대로도 위급 상황에서 잘
서 줄것인지 궁금했다.
이는 더 부드러운 정지를 위한 패달 답력 세팅 차이일 뿐이라고 현대차 관계자는 말했다.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제
네시스 쿠페는 국내서 처음만든 후륜구동 스포츠카다. 지금은 시장 상황이나 가격 등 고려 사항이 많기 때문에 기대에 다소 못미치는
수준의 차가 나왔다. 4천만원짜리 차를 베이스로 2300만원대의 차를 만들려 했으니 원가 절감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 차는 시작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 이 차가 성공하길 바란다. 그 성공으로 한국에서도 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스포츠카가 나와 줄 것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