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죽을뻔 했습니다.
오른쪽 하단에 있는 제 달리기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최근 뛴 거리가 많아야 2~5km. 뛴 거리를 총 합쳐봐야 10km도 안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출장 다녀온 이후로 심한 목감기에 걸렸어요.
그런데 무슨 베짱으로 나이키 휴먼레이스 10K를 뛰겠다고 했는지...
여튼 갔습니다. 휴먼 레이스.
어째 어린 분들 밖에 없습니다.
알고보니 35살 이하가 90%가 넘고, 여성이 60%가 넘는 레이스라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저는 노인네 남성이니 이 대회에서 4%에 속하는 인물이었던 겁니다. 쩝. 남의 잔치 온 것 같지만 일단 뛰어보기로.
이쯤 되면 왜 여자만 찍었느냐 이런 분들 꼭 계신데.
참가자 60%가 여성분이었다니까요.
국민학교때 100미터 달리기 하기 전, 자기 차례가 됐을 때 그 떨리는 기분이랄까요. 조마조마 합니다. 뛰다 쓰러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구. 기록이 1시간을 넘어가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벼라별 사람들이 돗대기 시장 불난듯이 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 양반은 죽었나 살았나 싶을때
간만에 뛰는데다 목감기에 배도 아파서요. 흑흑. 1시간 9초였습니다.
가볍기도 한데다 쿠션도 충분하고 발이 안쪽으로 꺽이는 현상(내전)을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좋더군요. 발이 전혀 아프지 않았어요.
러너의 40%가 내전을 겪고 있다죠. 내전을 방지해주는 안정화가 정말 중요합니다. 운동화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한번 다뤄보죠.
국내에 10km 종목밖에 없는 마라톤은 거의 없습니다. 마라톤이라는 말 자체가 42.195km를 뛴다는 의미니까요. 하프마라톤 대회라도 20km 대회에 10km 종목을 끼워넣은거라서, 10km를 뛰면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게 됩니다.
10km를 뛰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니 애들 장난같은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뛰어보니 이거 꽤 재미있더군요. 풀코스도 뛰어봤지만, 이번처럼 가벼운 도전으로 모두들 즐겁게 놀 수 있다는게 놀라웠습니다.
혹자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마라톤처럼 인간의 극한을 경험하는 운동은 극한의 순간에 가까워질 수록 엔돌핀과 아드레날린 등 물질이 분비돼 마약류를 맞은(High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풀코스 마라톤을 뛰어봤지만,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이번에 10km를 뛰어보니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발 전 쳐진 몸과 마음이 뛰고나선 산뜻하고 기쁜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이죠. 골골대던 감기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하늘을 붕붕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됐습니다.
또, 마라톤을 뛰고 난 사람들끼리 별것 아닌 일에 서로 웃고, 떠들고, 즐거웠습니다. 모두 표정이 이렇게 밝을 수 없겠더라구요. 거기다가 이어서 바로 콘서트를 여니까, 사람들이 미친듯 열광하더군요. 콘서트 경험이 많던 DOC도 약간 놀란 눈치였습니다.
당연하죠. 다들 High돼 있었으니까요. 모두 소리치고 춤추고 뛰고 발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콘서트가 생애 최고의 콘서트로 느껴졌습니다.
'스카'가 이렇게 재미있는줄 알게해준 분들, 고맙습니다.
다이스(DICE)라는 밴드가 있던데, 처음 들어보는 밴드였지만, 실력도 대단했고 모두 좋아하더군요.
나이키 월드런.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구요. 내년에도 반드시 참가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