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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현대차 모터스튜디오, '명분'에 밀린 '디자인'

어쨌건 뭔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드세다.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혹여 이 건물에 대해 잘못 꼬집었다간 현대차가 어렵사리 뗀 첫 발을 도로 거둬들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다.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를 이끌고 산업 전체를 지탱할 수 있는건 그래도 현대차그룹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비판적 시각 통해 발전 시켜야

하지만 생각을 좀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가 어디 혼자 세계 5위 자동차 기업이 됐을까. 부족했던 품질을 참고 견딘 국민들과 계획 경제를 통해 보호 육성한 정부 도움이 뒷받침 됐기 때문 아닌가. 현대차를 세계 5위 기업으로 키워낸 우리 국민들이 누려야 할 합당한 권리, 국민들에게 돌려줬어야 할 혜택을 그동안 현대차는 한번도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다.


현대차가 국민들을 위해 내놓은 건축물이라고는 서킷이나 박물관, 교육시설도 아니고, 이 영업소 비슷한 건물 하나라니, 게다가 그걸 칭찬해줘야 한다니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게 첫 단추가 된다면 마냥 칭찬할게 아니라 그 내용까지 세심하게 살펴 잘못된 부분은 고쳐나가야 더 큰 발전도 있지 않을까. 


이전만 못한 리모델링, 차량 접근성 떨어져

그래서 건물을 본 소감을 솔직히 말하자면 터무니 없이 아쉽다. 이 건축물은 그 존재 자체로 독과점과 계열화의 폐해를 그대로 웅변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10년전 지어진 인피니티 강남 전시장. 현대모터스는 이 건물의 대부분을 허물과 2년전부터 리모델링을 거쳐 이번 전시장이 만들어졌다.

이곳은 이전에도 자동차 전시장이었다. 지난 2012년까지 인피니티 딜러가 입주해 있던 건물이다. 직선과 곡선, 전통적인 한지와 나무를 적절히 배합해 실내 공간의 아름다움과 고급감을 극대화했다. 내부의 조명은 외부로 스며나와 동양적인 윤곽을 밝히는, 그래서 어떤 조명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 실로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닛산의 글로벌 브랜드 콘셉트에 따라 만들어진 세계 최초 건물이었고, 당연하게도 여러 건축 디자인 상도 수상했다.


현대차가 입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2년간 파란 천막으로 가린채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마니아들은 이 건물이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업그레이드 될지 두손 모아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와 포장을 벗겨보니 당황스럽다. 지난 2년간 대체 뭘 공사했다는건지 묻고 싶다. 유리 너머는 신형 제네시스가 전기구이 통닭처럼 무질서하게 매달려 어수선한데다, 외벽 유리창 틈으론 어설프게 발린 하얀 실리콘 끄트머리가 너덜너덜 바람에 휘날린다.


주차장 입구는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차가 세대만 들어와도 인도를 가로막아 보행자 통행과 우회전 차량을 가로막게 된다. 다른 업종이면 몰라도 자동차 회사가 차량 접근성을 고려 안했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현대차 최초 체험전시장 '모터스튜디오'

내부는 쇠파이프 전시장?

건물에 들어서면 더 놀랄수 밖에 없다. 전시장 내부가 온통 쇠파이프로 둘러쳐져 공사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쇠파이프는 건축물을 위해 깔끔하게 새로 만든 것도 아니고 '하이스코 강제전기관'이라는 글이 그대로 적혀있는 쇠파이프를 굽혀 만든 것이다. 벽면에는 아연전기도금강 등 다양한 강종이 둘러쳐져 있는데 이 또한 조잡하게 느껴진다. 비록 디자인의 문외한이지만 얼마전 현대 제네시스를 구입한 소비자 입장에서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모두 만드는 자동차 회사는 세계에서 현대차 밖에 없다고 해요. 그래서 그걸 상징하기 위해 이렇게 현대제철이 생산한 제품으로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자칭 '구루'라는 한 안내원의 말이다. 구루는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스승은 말씀을 이어갔다. 

"제 옷도 특이 하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차량 실내의 헤드라이닝이고 이 부분은 가죽시트를 잘라 만든 옷입니다" 


특이 하다 마다. 자동차 재질을 형상화한 옷이 아니라 실제 자동차 부품을 그대로 갖다 썼으니 당연히 어색하고 엉성했다.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에 신음하고 있는 제철산업에 뒤늦게 뛰어든, 세계 유일의 '자동차 회사'라는 점이 어떤면에서 자랑 할 일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양한 기능에 매몰된 자동차 전시장의 '기본'

갖춘 기능은 참으로 다양하다. 2층에는 도서실이, 3층에는 어린이 놀이방, 4층에는 자동차 실내 구성 체험 공간이 있다. 그런데 각 공간은 잘해야 5~10평. 이런 공간에서 어떻게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체험을 한다는걸까.


그나마 관계있는 자동차의 실내를 꾸며보는 공간엔 가죽을 비롯한 각종 소재들이 그대로 테이블에 널려 있어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밀려드는 경우는 관리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기능은 많지만 정리가 안되고 어수선한 점도 현대차를 닮긴 했다.


이쯤 둘러보고 나면 '디자인의 총체적 난국'이라 할만하다. 이렇게까지 디자인이 무너진 이유는 모두 여러 명분들 때문이다.


우선 뭘 해야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보인다. 정작 어떤걸 전시해야 하는지, 그 내용에 대한 연구도 없고, 일관된 이미지도 만들지 못했다. 그저 '남들이 다 한다니 나도 한다'라는 '미투' 주의 명분이 빚어낸 촌극이다. 이것저것을 마구 더해놓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잡탕밥 스타일의 공간이 됐다. 


둘째는 계열사를 추켜세워야 한다는 명분이 앞섰다는 점이다. 전시물은 자동차가 총 10종 전시됐다. 그 흔한 절개 모형 하나 없고 어떤 기술적인 내용도 전시되지 않는다. 반면 '구루'는 이 전시장을 꾸민 철강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수도 없이 설명해준다. 차종보다 철의 강종이 더 많이 전시 됐으니 현대 자동차 전시장이라기 보다는 현대제철 전시장이라고 하는게 차라리 옳다. 


어려움이 많았던 설치 과정...협력사 직원들 밤샘시키기도


여기까지 만들어지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는 신형 제네시스의 론칭행사를 이곳에서 하겠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고위 관계자들이 디자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재공사를 지시해 수차례 완공이 미뤄졌다. 전시장 개관을 몇달 앞두고부터는 새벽내 전시장의 불이 꺼지지 않았고 밤이고 낮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양복을 차려 입은 경호원들이 앞을 수개월이나 지켰다. 당시 건물 내부 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는데 누군가 달려와 제지하는 통에, 경호원 보는 앞에서 찍은 사진을 삭제해야 했다. 


약 한달전엔 '현대차 모터스튜디오' 관계자 중 한명이 전화로 볼멘 소리를 했다. "정의선 부회장님이 내일 현장에 방문한다셔서 오늘까지 전시물을 갖다 놓으라잖아요. 갑자기 얘기해서 지금 협력사들 모두 밤샘하고 있어요" 자신들은 물론 협력사 직원들까지 밤샘 하는걸 당연하게 여기는게 이 회사 문화다. 


이곳의 '구루'는 하나같이 계열사 '이노션'의 정직원들이 동원됐다. 본래 큐레이터 일을 하기 위한 직원이 아니라 일반직에서 차출됐다고 했다. 싱그러운 기운이 넘치는 이 젊은이들은 너무 친절해 결코 불평을 할 수 없었다. '현대차 모터스튜디오'는 근면한 인력을 동원해 근원적 부실함을 막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 또한 요즘 현대차 그룹의 모습을 고스란히 빼다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