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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GM대우 부사장 "내가 봐도 토스카보다 쏘나타가 낫다"

어제 GM대우에서는 송년의 밤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마이크 아카몬 사장이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남을 가졌죠.

이번 만남에서 가장 놀라운 모습을 보인것은 릭라벨 부사장이었습니다. 작년만 해도 낯을 가리던 분이 먼저 나서 폭탄주를 권하기도 하고, 한국 문화에 이제 꽤 익숙해진 듯 했습니다.

심지어 이날  폭탄주 뿐 아니라 폭탄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썰렁한 자리에선 뭔가 어색함을 깨뜨리기 위해 뭐라도 얘기하기 마련이죠. 그러다보니 저희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릭라벨이 먼저 묻더군요.

"광화문 광장은 좋냐? 나쁘냐?(good or bad)"
"시멘트 덩어리라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옆자리 있는 박찬규기자가 얘기함)"
"당신 의견은 어떠냐"

릭라벨: "글쎄, 일단 보기에는 좋다.(good looking) 사람들도 많이 오고 그러는걸 보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거 아닌가"

제가 물어본건 이겁니다.

"그러면, 한국차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그것도 역시 보기에는 좋으니? 우린 그냥 외국인의 의견이 궁금해서..."
(so, what do you think about Korean cars, is that 'good looking' also? well, I'm just wondering foreigner's opinion)

릭라벨 부사장의 의견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한국차들이 대단히 호화스러워졌다(스펙테큘러) 지난주에는 청라에서 쏘나타를 운전해봤는데, 깜짝 놀랐다. 외관도 그랬지만, 실내에 들어가서 난 그저 제일 먼저 '와우!'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날씨도 너무 좋았는데 파노라마 썬루프를 열자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졌다. 모든게 대단히 화려한(스펙테큘러)차였다"

남의 브랜드에 대해 이렇게까지 칭찬을 하는 사람은 전 아직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릭라벨은 진정으로 좋고 나쁨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쏘나타가 너희 토스카보다도 좋다는 말이니?"
you mean, Sonata is better than Tosca?

주변 기자들이 웃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할리가 없으니까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죠. 하지만 릭라벨 부사장은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YES!"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지금 맞다고 말한거야?" (did you say yes?)

"맞어,
왜냐면 토스카는 나온지 오래된 차잖아. 쏘나타는 완전한 신차고. 완전한 신차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건 당연하지. 토스카도 조만간 신차가 나올거고, 그때는 다시 쏘나타보다 훨씬 우수해질거야. 기대해도 돼."

맞는 말이었습니다. 수천억원의 개발비를 들인 새 차를 내놓으면서 기존 차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차를 내놓는 바보는 없을겁니다. 당연히 지금 나온 신차가 우수할 것이고, 토스카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면 되는겁니다.

하지만, 릭라벨 부사장 어찌나 쿨한지. 기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 맞장구도 못치고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일년전 술자리에서 뻘쯤하게 질문하는것마다 노코멘트를 연발하던 바로 그 사람이 맞는지 제 기억력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몇년간 한국생활이 그를 바꿔 놓았습니다. 쪼잔하게 자기 자신을 속이고 차 몇대 더 팔겠다는게 아니라, 모든 객관적인 정보를 오픈하고 용감하고 대범하게 선택 받겠다는 겁니다.

다음 질문 "국내서 가장 멋진 디자인의 자동차는 어떤 것이니"라는 질문에 그는 주저없이 "라세티 프리미어"라고 답했습니다. 모두 그의 말에 감탄 했습니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앞서 더 나은 차를 인정하고 난 뒤라 그의 말에 값진 진실이 몇배는 더 담겨보였습니다. 자기 회사차보다 타사 차가 좋다고 말하는 그가 자신있게 권하는 차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난 모든걸 최고로 잘해"라는 것은 문장 자체가 모순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데도, 자기 차가 세계 최고라고 우기는 회사라면 아마 영원히 그 모양으로 남겠죠. 남이 잘한 것을 인정해야 발전도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