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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내 차 사용 설명서'라는 책이 나왔습니다…만 불안하네요

최근 자동차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큰 폭으로 늘어났지요.


삼성전자가 한창 주가를 올리며 IT가 키워드가 됐던 것처럼 

이제는 현대차와 각종 수입차 업체들이 붐업을 일으키면서 자동차가 키워드인 시대로 접어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발맞춰선지 요즘은 자동차 업계에 출판 바람이 불고 있지요.


주변에도 책을 이미 쓰셨거나 쓰고 계신 기자분들이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섭외가 이뤄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선지 이 책도 나오자마자 YES24 등 온라인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내 차 사용 설명서'라고 합니다. 자가점검과 자가정비를 위한 쉬운 메뉴얼이라고 하니까 꼭 필요한 책이 나왔구나 하고 안도의 마음도 생기고, 우리 자동차 문화가 점차 발전하고 있구나 생각도 돼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직접 책을 보지 못했고, 보도자료를 통해서만 일부 내용을 봤는데요.


'설명서'라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요즘 유행하는 컬러풀한 사진책으로 시원시원한 구성이 눈에 띄더라구요. 


그런데 내용을 좀 살펴보니 이상한 면이 있었습니다.


일단 검게 변한 이유가 특정한 성분 때문이라 주장하는것도 황당한데 '포리마'라는 성분이 대체 뭘까요? 

혹시 '폴리머(Polymer)'를 일본식으로 발음한건 아닌가요? 

내용을 보면" 시중에 '포리마' 성분을 쓰는 엔진오일이 많아서 엔진에 들러붙는 경우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게 들어있는 엔진오일을 쓰면 엔진에 붙어 마모가 진행되고 엔진 소음도 커지기 때문에 세정력이 좋은 엔진오일(?)을 넣고 플러싱을 해줘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네요. 위의 왼편에 저 끔찍하게 빨간 캠샤프트 사진을 가리키며 찌꺼기가 고착된 엔진이라는데, 설마 저걸 곧이 믿는 분이 있을까 무섭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래 내용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점화플러그를 운전자가 스스로 교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것 같은데요. 

난데없이 점화 코일을 분리하라는 그림이 있네요. 이거 뭔가 이상합니다. 사실 요즘 차는 점화 플러그도 거의 교체할 일이 없는데, 그보다 수명이 훨씬 긴 점화코일은 대체 왜 분리하라는걸까요?

그보다는 '9. 새 점화플러그로 교체한다'라고 쓰여진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소개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토크렌치를 쓰지 않으면 헤드 나사산이 망가져 헤드 전체를 갈아야 할 경우가 있다는걸 주의 시켜줘야 하는게 아닌가요. 

다음에 온 사진을 보면. 타이밍벨트(Timing belt)네요.

일단 스펠링부터 Timming belt라고 써 있어서 틀렸네요. 
 

위에 보면 타이밍벨트가 무엇인지 설명도 엉터리지만 요즘에는 타이밍 체인이 대중화 돼서 고무로 된 타이밍 벨트를 이용하는 차가 거의 없는데 불필요한 설명을 하고 있지요.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펑크나면 반드시 후방 100미터 지점에 비상삼각대를 설치하라는 얘기가 있네요. 너무 위험한 조언인데요. 더구나 트렁크에서 삼각대 꺼내다가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운전석에 보관하라는 황당한 조언에는 웃음이 좀 나올정도. 


저도 책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얼마나 좋은 정보가 담겨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보도자료로 온 내용 몇페이지만 봐도 잘못된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잘못하다 '선무당이 차 잡는' 책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사실 이런 책들은 디자인이 잘 돼 있고 쉬워보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쉬운 책은 아닌것 같고, 정확한 책은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정비관련 책이라면 현장에서 차를 설계하고, 생산라인에서 차를 조립했던 사람들이 참여해야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는데요.

저라면 차라리 이런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3745390?scode=032&OzSrank=8 


각 자동차별 정비 지침서입니다. 생각보다 쉽고 자세하게 설명돼 있는데 자기 차를 아끼는 마음으로 하나씩 소장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권에 4만원 정도 합니다. 차종별로 파워트레인이 분리된 책도 있고 통합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들은 모두 차에 특정 소리가 나거나 매연이 나오는 경우등 문제의 양상별로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고, 해결 방안도 아주 정밀하게 일일히 적어두었습니다. 정기 점검이나 차에서 살펴봐야 할 내용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모든 정비사들이 보는 교과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1994년 부모님 몰래 티코를 살 때 돈이 한푼도 없었기 때문에 엔진오일교체같은 경정비에서 브레이크 마스터실린더 교체같은 다소 난이도 높은 모든 작업을 DIY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도 정비지침서가 매우 상세하게 적혀있어서 문외한이었던 저도 쉽게 차를 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정비불량으로 차가 전복, 폐차된 이후 더 이상 DIY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자동차를 살때면 정비지침서를 함께 구입하는 버릇을 들였는데요. 제 지식수준으로는 내용의 절반 정도 밖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정비소에서 바가지 쓰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됐습니다. 서스펜션이나 파워트레인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덤이었구요. 

요즘은 단순히 시류에 편승해서 날림 기획으로 어떻게든 대강 자동차 관련 책을 만들어 펴내고 이걸 홍보하는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몇몇은 이렇게 몇차례 반복해 약간의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책을 산 독자들은 무척 마음이 상할거고, 혹시 앞으로 제대로 된 자동차 콘텐트가 나오더라도 돈주고 구입하지 않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모쪼록 눈앞의 이익을 얻자고 어렵사리 지펴진 관심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