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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쏘나타와 페라리, '산길 연비 비교' 그 뒷얘기

"그래, 진짜로 한번 해보자" 그게 저희 생각이었습니다.


어느새 자동차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연비'가 됐지요. 10년전만 해도 거들떠 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뻥연비’다 아니다 말도 많습니다. 이유는 공인연비(표시연비)가 실제 연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특정 업체의 특정 차종은 이상하게 표시연비가 잘나오는데 비해 실제 주행해보면 그에 턱없이 부족한 연비를 낸다는겁니다. 



표시연비와 실연비에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는 일부 차들이 표시연비를 측정하는 기준에만 딱 부합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표시연비를 측정할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속하거나, 언덕 길을 자주 오르거나 하는 운전자들은 연비가 큰 폭으로 떨어지게 될겁니다. 마치 문제 답을 달달 외워서 쓰는 것과 같아서 문제 유형이 조금만 바뀌면 제대로 풀 수 없게 되는거죠. 


그래서 다른 유형에서도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아무도 이걸 하는 팀이 없더군요. 그래서 저희가 실제 연비를 측정해보기로 했습니다. 공인된 실험방법으로 매번 정확히 주행할 수 없으니 2대의 차를 똑같이 주행하면서 여러가지 상황에서 1:1 비교를 하는거죠.


가장 먼저 비교 대상으로 잡은 것은 쏘나타 하이브리드였습니다. 최근 “쏘나타 하이브리드 연비가 리터당 8km 밖에 안나온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에서 가장 연비가 좋다는 자동차가 8km/l를 낸다면 이건 기술적으로도 불량이지만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나쁠리가 있겠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첫번째 비교는 최악의 조건을 만들어 표시연비에 비해 연비가 가장 떨어지도록 해보기로 했습니다. 산길을 급가속하면서 오르내리는겁니다. 


비교차종은 국내 판매 차 중 표시연비가 가장 안좋지만 실제 연비는 좋게 나올만한 차를 골랐습니다. 페라리 캘리포니아(표시연비 5.7km/l)였습니다. 실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포르쉐 정도면 몰라도 페라리로는 연비가 비교가 안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 예상을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 어떤 차 만들어야 하나, 복잡해진 현대기아차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이렇게 나오게 됐는지를 살펴봐야겠습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별 연료 구성을 보면 일본이나 미국은 가솔린이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고 유럽은 디젤이 대세를 차지해 왔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디젤과 가솔린, 거기에 LPG까지 3가지 연료가 대등한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차세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은 고효율 디젤로, 일본은 하이브리드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디젤과 하이브리드가 맞서는 전쟁터가 되고 있는겁니다. 마치 여기서 승리하면 세계 시장에서도 승리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지 유럽과 일본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대기아차의 입장이 아주 복잡하게 됐지요.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1등을 따라가자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는데 차세대 자동차는 누가 1등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된겁니다. 


"궁금하긴 궁금하다...왜 요즘 자꾸 도요타 캠리와 비교하는지" 라는 내용의 도요타 TV광고.


90년대말 정의선씨가 현대자동차 상무로 들어온 즈음부터 현대차는 이상하게도 도요타가 한다면 뭐든 따라간다는 주의로 돌아섰습니다.


도요타의 저스트인타임(JIT) 생산체계나 정숙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동차 만들기를 도입하고, 엔진이나 실내 구성도 이전의 미쓰비시 냄새를 완전히 벗고 '도요타를 따라하는 현대차’의 분위기로 전환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2세대)가 미국 캘리포니아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중형차에도 하이브리드를 더하기 시작하자, 현대차도 이런 차를 내놓기로 합니다.



그 결과 2007년 부랴부랴 내놓은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는 정말이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기술력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태로 무리하게 하이브리드화를 추진하다보니 페달 감각이 엉망이고, 여름엔 정차할 때마다 에어컨에서 계란 썩는 듯한 냄새가 났습니다. 가장 나쁜 점은 연비가 일반 가솔린 모델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LPG 가격이 가솔린의 절반에도 못미쳤는데, 현대차는 아반떼 하이브리드가 LPG연료를 이용하므로 연료비를 환산하면 가솔린보다 효율이 높다는 터무니 없는 광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LPG 가격이 오르면서 이같은 설명도 민망함 속에 사라지고 말았지요. 


더구나 현대차는 당시 하이브리드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멀쩡히 팔리던 아반떼 디젤모델을 갑자기 단종 시키고 말았습니다. 최근 뒤늦게 아반떼 디젤 모델 등을 되살렸지만 성능과 연비가 신통치 못하고 판매량은 이미 바닥을 찍고 있는 상태여서 당분간 디젤라인의 회복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이 영역에서 저가 수입차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현대차 입장에선 잘못된 선택에 뒤늦게 후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쏘나타 하이브리드, 페라리와 비교해 산길 운전 해보니


이래저래 좀 이상하게 탄생한 쏘나타 하이브리드, 이 차는 괜찮은건지 여부를 알기 위해 여러가지 테스트를 해봅니다. 속속들이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모터그래프 기자들이 번갈아 차를 운전해가며 연비 측정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역시 연비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황당하게도 시내에서 10km/l의 연비에 도달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연비가 마구 떨어집니다.


산길 주행 테스트를 위해 중미산을 찾았습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한껏 달리고 페라리가 뒤를 바짝 쫓는 방식으로 달렸습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산길을 오를때 페달을 꾹 밟아야 했고 엔진이 터질듯한 거친 소리가 났습니다. 이 차에는 RPM 게이지가 없어 정확한 기어나 엔진 회전수를 알 수는 없었지만 높은 엔진 회전을 유지하는 건 분명했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부터는 가속페달을 밟아도 1~2초간 제대로 가속이 되지 않거나 변속기에서 ‘쿵’소리가 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엣킨슨 사이클 엔진 탓인데요. 이런 엔진은 모터가 활동을 못하는 상황에선 초반 가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연비도 심각한 수준까지 하락했습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산길을 달릴수록 연비가 떨어지더니 표시 연비가 5.1km/l 정도로 낮아졌습니다. 너무 심하게 떨어진다 싶기도 하고, 이 정도면 페라리의 표시연비보다 낮은 수치라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페라리도 연비가 떨어질테니 아마 이 정도면 쏘나타가 조금은 이기겠다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데 페라리의 경우는 반대였습니다. 산길인데도 불구하고 5단이나 6단, 때로는 7단까지 들어가며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바짝 쫓을 수 있었습니다. 엔진회전수가 1500~2000rpm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마치 이 정도 길은 평지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더군요. 그러나 페라리는 트립컴퓨터에 연비 표시가 없어서 연비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산을 오르내기리만 20차례, 연비 측정은 밤늦게까지 계속됐고 페라리를 타고 드라이브 하는 것도 처음에나 재밌지 나중에는 힘들어서 온몸이 욱신거리더군요. 참고로 쏘나타는 주유소까지 가는데 조금 헤멨기 때문에 자동차전용도로를 7km 정도 더 주행했는데 연비는 주유량/거리로 계산하기 때문에 이 정도 늘어난 거리는 양해하기로 했습니다.


출발 전 기름을 주유하고 도착 후 다시 기름을 넣는 방법으로 연비를 측정했습니다. 물론 기름을 1~2리터 넣는거라면 주유 상황에 따라 오차가 심해 이런 방법을 쓸 수 없지만 우리는 180km가 넘는 산길을 과격하게 달렸기 때문에 기름이 적어도 20리터 이상 들어갈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주유 상황에 따른 미세한 오차 쯤은 만회할 수 있습니다.


아래가 바로 이 연비 측정을 실험하면서 힘들게 찍은 영상입니다. ^^



 쏘나타 하이브리드 ’뻥연비’ 상상이상 


기름을 넣는데 후배 입에서 으악!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페라리에 들어간 휘발유가 27.2리터였는데 쏘나타에는 39.8리터나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설마 했는데,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페라리보다 기름을 더 많이 먹은겁니다. 아니 그냥 많이 먹은 정도가 아니라 30% 이상 더 많이 들어갔습니다. 

 

결국 쏘나타 하이브리드 연비는 4.7km/l로 계산 된 반면 캘리포니아는 6.6km/l로 계산됐습니다.



(참고: 물론 페라리 휘발유는 고급휘발유고 쏘나타에 들어간건 일반휘발유입니다. 일반 차에도 고급휘발유를 넣는게 연비에 좋다고 알고 계신분이 계시다면 완전히 잘못 알고 계신겁니다.)


물론 이건 실제 주행상황이 아니라 엄청나게 가혹한 조건이고, 얼마나 연비가 나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겁니다. 반대로 페라리는 똑같은 조건에서도 표시연비보다 훨씬 좋은 연비를 기록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주행조건에 따라 표시연비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이번 주행 테스트가 재미있는 실험이긴 하지만 산길에서 페라리와 연비 비교는 실생활에선 큰 의미가 없고, 경쟁모델들로 실제 주행 조건에서 테스트하는게 더 중요할겁니다. 


그래서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렉서스 ES300h 하이브리드, 폭스바겐 파사트 디젤과도 연비를 비교했습니다. 거듭해 실험하다보니 우리 표시연비 측정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놀라운 결과는 다음주에 공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