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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오늘의 사진

후륜구동은 왜 눈길에 달리지 못할까?

어제 지하주차장에서 나서다 깜짝 놀랐습니다.

제 차가 후륜구동인데, 평지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이지 못하더라구요.

지금 제 차에 장착된 타이어는 한국타이어 EVO V12라는 퍼포먼스 타이어인데요. 이건 하절기 타이어여서 눈길 주행에 어려움이 있어요.

사실 처음에 타이어가 따뜻할 때는 괜찮았어요. 장난으로 미끄러뜨려 보기도 하고, 드리프트도 해보고 하면서 놀았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원해도 전진할 수 없게 되어버리더라구요. 어느 정도 눈이 달라 붙으니 타이어의 홈이 메꿔지면서 눈을 전혀 헤치지 못하더라구요.





마침 저 멀리 포르쉐 한대가 눈길에서 헤메고 있더군요. 여성 운전자가 차에 탔다 내렸다 하면서 차를 바라보고 있네요. 아파트 관리인을 비롯한 남자 3명이 차를 밀었다 당겼다 운전했다.. 하더니 어디선가 삽을 들고와 바닥의 눈을 치우기도 하면서 간신히 차를 이동 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차는 포르쉐911이지만 4륜구동(Carrera 4S)이어서 눈길에도 주행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차체가 경량이고 타이어가 넓어서 눈을 충분히 파고 들지 못하기 때문에 4륜 구동이라도 눈길 주행이 어렵습니다. 또 기본 장착 타이어가 브리지스톤 RE050A라는 하절기 타이어여서 눈길에 치명적이죠.

광고에 눈길 주행을 자주 보여주는 아우디 콰트로(Quattro)라도 눈길 주행이 훨씬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콰트로라 해도 최근 차들 일부(A3,S3,TT 등)는 토센(Torsen) 기어를 이용한 상시 4륜이 아니라 할덱스를 이용한 비스커스 커플링방식(혹은 전자제어 방식) 4륜을 이용하는데, 이 장치들은 눈길 주행에 큰 도움이 안됩니다.

눈길을 돌파하는 방법은 다양한 연구와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눈을 파고 들어 돌파할 요량이면 VDC(ESP)를 꺼야 합니다. 타이어가 타는 냄새가 날 때쯤, 타이어가 땅에 닿아 앞으로 전진하는 힘이 조금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눈을 타고 넘겠다는 생각이면 VDC를 켜야 합니다. 여러가지 테스트를 해보셔야 할겁니다.

공기압을 30%가량 빼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한국 타이어 측은 "공기압을 낮추면 접지 면적이 커지고 접지력이 오히려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적절한 공기압에서 가장 높은 접지력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압을 빼면 눈길에서 주행 능력이 좋아진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실제와 이론이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모든 후륜구동이 눈길 주행에 문제 있는건 아니다.

후륜구동이 눈길 주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들을 하는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길에서 발군의 주행능력을 보였던 버스나 트럭들이 모두 후륜구동이니까요.

문제는 우선 밸런스입니다. 고급 스포츠카들은 운전자가 승차했을때 좌우 앞뒤의 무게 배분이 정확히 50:50에 가깝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반면 버스는 후륜구동이지만, 엔진과 연료 등이 대부분 후륜에 실려 있어서 뒷바퀴에 실리는 무게가 훨씬 큽니다. 뒷바퀴 후로 오버행도 엄청나게 길어 때문에 승객 무게의 대부분을 후륜에 지탱하도록 설계돼 있기도 합니다. 아마 조향이 쉽도록 설계된 것이겠지요. 이런 언밸런스한 구조 덕분에 평상시 주행 능력은 신통치 않지만, 눈이 오면 후륜 타이어가 눈을 파고 들어 차가 달릴 수 있게 됩니다.

472번 버스 운전자에게 여쭤보니 "일반 버스는 뒤가 무거워 잘 달릴 수 있지만, 저상 CNG 버스의 경우 그렇지 않다"며 "전면 천장위에 CNG연료통을 싣고 있어 무게 배분이 좋아 평상시는 좋지만, 눈길에선 훨씬 미끄럽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 보급중인 저상버스. 천장위 얹힌 저것이 CNG연료통이라고 합니다.


국산 전륜구동 승용차들도 무게의 대부분이 전륜에 실리는 '언밸런스 차'입니다. 때문에 전륜구동 승용차들이 타이어가 눈을 파고들어 잘 달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반면 꽁꽁 언 빙판길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다 마른 노면에서 심한 언더스티어를 가져오니 일장 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밸런스 문제는 트럭에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짐을 많이 실어놨다면 눈길에서 잘 달릴 수 있는 반면, 짐칸이 가벼운 트럭은 눈길에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또 다른 문제는 타이어입니다.

472번 시내버스운전사는 "겨울철에 대비해 동절기 타이어를 장착했기 때문에 잘 달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요즘 시내버스나 소형 트럭은 일명 바이어스 타이어(Bias tire 대체로 가로 홈이 깊은 타이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일부 대형 트럭들은 바이어스 타이어를 통해 진흙이나 눈길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내 판매되는 후륜구동 수입차들은 퍼포먼스를 중시하다보니, 동절기 타이어는 커녕 사계절 타이어도 끼우지 않고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절기 타이어는 마른노면 접지력이나 배수성이 우수하지만, 눈길 주행에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후륜구동이 문제가 아니라 밸런스가 잘 맞고 경량화 된 차가 스포츠타이어까지 끼운게 문제라는 겁니다. 50:50으로 유명한 제 차는 어떻게 집에 들어 갔을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길래 트렁크를 열고 아파트 경비아저씨보고 트렁크 문턱에 앉아있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DSC는 끄구요. 그랬더니 타이어가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연기가 나더니만 눈길을 뚫고 진행하더군요. 십년 감수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음주에는 동절기 타이어를 장착하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사용기를 올려보겠습니다. 오늘 장착하려 했는데, 타이어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