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중국 베이징 모터쇼에 다녀왔습니다.
정말이지 중국 모터쇼는 매년 대단한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수선하고 난잡하고, 괴상한 물건으로 가득했던 중국 모터쇼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토종브랜드 판이었던 그곳이 이제는 글로벌 브랜드의 경합이 이뤄지는 장소로 거듭난 듯 했습니다.
베이징모터쇼의 한 모델.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중국은 벌써 수년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시장이 돼 오고 있습니다.
독일 메이커인 폭스바겐이 88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중국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았고, 이어 GM과 현대기아차가 뒤를 잇는 형국입니다.
닛산과 도요타의 약진도 두드러집니다.
무엇보다 글로벌 브랜드의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고, 중국 토종 브랜드를 찾던 중국인들도 독일차와 한국차 일본차를 찾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되고 있습니다.
웬 블로그에서 잘 정리한 도표. 아마 원문은 조선일보 같은데가 아닐까 싶다. 글로벌 브랜드의 약진과 토종브랜드의 고전이 눈에 띈다. 회사별 통계. 즉, 기아차와 현대차를 합치면 뷰익과 쉐보레를 합친데 이어 3위가 된다.
이들 글로벌 브랜드 차량의 판매량이 너무 급격히 늘다보니 생산한 100%가 재고 전혀 없이 모두 판매되는 형국입니다. 따라서 현지 공장이 얼마나 많은가, 생산량과 품질은 충분한가가 중국시장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중국 북경현대차 제2공장에 다녀왔습니다.
중국 시장의 특이한 점은 모든 기업들이 법적으로 중국기업과 50:50의 자본으로만 설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경현대차 또한 우리 기업이라고 하기 보다는 북경자동차(북경기차)라는 국영기업과 50:50으로 제휴한 회사고, 동풍열달기아는 동풍자동차와 강소열달투자주식회사, 그리고 기아차가 25:25:50의 자본 제휴가 이뤄진 회사입니다.
그러다보니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뭔가 생산을 하려면 중국 파트너인 북경 자동차, 동풍 자동차와 기술공유를 해야만 하게 돼 있습니다.
북경현대 2공장 부총경리
이날 북경현대의 부사장 또한 "우리는 중국과 50:50 제휴사이기 때문에 중국 엔지니어와 기술 자료를 공유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당연한 일"이라고 합니다.
현대차 본사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이 10년 이내에 우리의 품질 수준을 따라오게 될 것으로 보고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하는데요.
말하자면 중국이 언제 우리를 넘볼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면서 상대방에게 칼자루를 쥐어줘야 하는게 또한 현실인 셈입니다.
몇년전에는 현대차 울산 공장에도 가봤고, 몇군데 공장도 둘러봤는데, 당시는 라인에 아주 독특한 풍경이 있었습니다. 너무 여유로운 나머지 일부 직원들은 라인 곁에 책을 펼쳐놓고 책을 읽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위험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이어폰 착용 금지라고 쓰여진 표지판도 있지만, 아랑곳 않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중국 엔지니어들의 노동강도는 그리 힘들어 보이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생산직 사원들에 비해서는 부지런해 보였습니다.
더구나 중국엔지니어들은 공회라고 하는 노조가 있는데, 이 노조는 임금을 협상하거나 회사와 대치되는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보자'는 조직이어서 우리와 개념을 달리합니다.
또한 '회사는 노동자의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중국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중국 노동자들은 바보같이 피만 빨리고 있는가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현대차 경영진이 북경현대차에서 아무리 수익을 뽑아가려 해도 50%는 어차피 국영기업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 많이 가져갈 수 없구요.
또 중국시장이 계속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수익을 고스란히 다시 중국에 재투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인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해야 하구요.
임금 수준은 공산당이 정해주는 수준에서 줘야 하기 때문에 대 기업이 마구 노동착취를 하는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아무리 용을 써봐야 저 공장과 설비는 중국, 노동자 또한 중국의 노동자, 기술력 또한 중국인들의 머리와 손끝에 남는 것이니 중국 입장에서는 해외 기업들이 마구 들어와도 전혀 손해 볼 게 없습니다.
태국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 기업들이 외국 자본이 밀려들어오면서 나라의 국부를 모두 빼앗긴것과 대조적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이들은 높아진 기술 수준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결국에 언젠가는 우리를 위협하게 될겁니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이를 뻔히 알면서도 중국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일 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주요 시장의 자동차 판매가 이미 포화됐을 뿐 아니라 경제 어려움으로 인해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싫으나 좋으나 살 길은 중국 뿐인겁니다.
그런 찹찹한 마음을 안고 공장을 살펴봅니다.
현대차가 최근 세계에 신흥시장에 공장을 쉴새 없이 지어가면서 표준화를 또 얼마나 잘했겠습니까.
현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할게 전혀 없지만 극도로 실용적인 공장 설비는 울산이나 여기나 똑같네요.
이번에 살짝 문제(?)가 됐었죠. 보닛에 붙은 작업지시서의 양식도 똑같군요.
여튼 공장 라인의 생산 방식은 우리와 완전히 동일해보였고, 품질에서도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OK 라인을 타고 나오는 신형 쏘나타의 모습.
기존에는 현대차 중국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차는 우리와 사뭇다른 것이었죠. 여전히 EF쏘나타와 아반떼 HD가 많이 팔리는 시장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우리 신형 쏘나타와 동일한 차, 신형 아반떼와 동일한 차가 라인에서 쏟아져 나오고 가격도 비싸게 받는다고 하니 참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래도 되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최신 기술을 전수한다는게 못내 불안한거죠.
최근까지만 해도 구형 아반떼와 EF쏘나타만 만들었던 이유에는 '중국 시장에는 다 주지 말고, 조금 후진 것만 줘서 기술격차를 만들자'는 생각이 조금은 작용했을겁니다.
그러나 중국 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전력투구를 해야 하는 시점인거죠. 그러다보니 이제는 모든 것을 내줘야 경쟁이 됩니다. 이거 중국의 술책에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알고보니 현대차 경영진은 애초부터 그런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차 중국 2공장 로비에는 공장에서 나온 위에둥(구형 아반떼를 기본으로 만든 중국 전략모델) 1호차가 전시돼 있는데요.
여기는 당시 생산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들이나 경영진들의 친필 사인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이름들은 다 모르겠지만 눈길을 끄는 사인이 하나 있었는데요.
몽구. 라고 짧게 적은 저 사인.
중국 시장을 반드시 공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몰라도 제게 현대기아차야 말로 바로 애증의 대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외국에서는 세계 최고가 됐으면 하는 생각도 동시에 작용하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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