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산 자동차의 리모콘 키의 수신거리가 짧은 이유가 있었다. 한국서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면서도 정작 도난방지장치의 전파 영역을 조정해주지 않고, 심지어 리모컨키를 '어린이 장난감'으로 등록하는 등 꼼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골프 운전자 최모씨는 며칠전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한 차를 찾으려고 리모컨키를 이리저리 눌러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침내 차를 찾은 후 3m도 안되는 거리에 오니 그제서야 문이 열렸다. 차를 찾기 위해 리모컨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최씨는 말했다. BMW 3시리즈 오너 김모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발렛파킹을 맡겼더니 관리인이 리모컨키가 고장났다며 들고 온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간혹 수입차가 왜 그러냐는 핀잔을 듣고 낯 뜨거워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아우디 등 수입차 운전자들의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신거리가 1m도 채 안된다는 불만도 많다. 문제는 대부분 독일차에서만 발생한다. 독일 제조사들이 국내 전파법에 맞게 차를 고쳐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독일 및 유럽에서 사용하는 리모컨키 주파수는 313Mhz와 433Mhz 대역이다. 그러나 국내 전파법상 이 영역은 이미 다른 용도로 할당 돼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313Mhz는 특정소출력(데이터전송용)으로, 433Mhz는 아마추어 무선기지국용으로 배정된 주파수다.
국내서 자동차 문 개폐와 시동장치용 주파수로 할당된 주파수는 447Mhz, 173Mhz, 311Mhz대 영역 등이다. 당연히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나 일본 제조사들은 이 규정에 맞춰 차를 만들고 있으며, 약 100미터 가량의 거리에서도 리모컨으로 차를 여닫을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차를 국내 전파법에 맞도록 만들지 않았다. 대신 리모컨키의 전파 출력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방식으로 인증을 통과했다. 극히 낮은 출력의 전파를 발생하는 장치는 어린이용 장난감 등을 위한 '미약전파법'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고 있는데,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 빈틈을 이용한 것이다. 자동차 리모컨을 '어린이 장난감'으로 등록했으니 당연히 멀리서 문이 열릴리 없다.
이 빈틈을 이용하면 자동차 이모빌라이저(도난방지장치)의 주파수 영역을 바꾸는 것에 비해 월등히 낮은 비용으로 전파인증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불편이 크게 증가했다.
'미약전파법'에 따라 리모컨키의 송신전파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신장치 기술 수준에 따라 작동거리가 달라지는데,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등은 5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지만 특히 폭스바겐은 1미터를 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차에 키를 대고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폭스바겐 광고의 한장면. 다스베이더의 초능력으로도 차 문을 여는건 어려워보인다.
폭스바겐 운전자들 중 상당수는 전파법 위반임을 알면서도 리모콘 키를 불법 개조해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21일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리모콘 키의 출력을 높여 수신거리를 연장했다는 글이 빈번하게 게재돼 있다. 일부는 출력이 높은 독일제키를 전파인증 없이 불법 구입해 개조했다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리모컨키는 방송통신기기에 속하므로, 불법개조하거나 판매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독일차 업계 관계자는 “본사에서 한국용 차량만 다른 주파수로 바꿔 생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규제가 완화되기 전까지는 달리 뾰족한 개선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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