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다른 언론사 얘기는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간혹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어서 한마디 적습니다.
우선 동아일보 종편인 채널A에서는 최근 이영돈 PD를 앞세운 폭로보도를 하고 있는데, 지난번은 귀신이 나오게 한다는 주문인 '분신사바'나 '폐가탐험' 같은 선정성이 도가 넘는 수준의 프로그램을 내보내더니 이번에는 냉면 국물에 대한 보도를 했습니다.
모든 식당이 그렇지야 않겠지만, 일부 식당 주인이 먹거리에 대해 너무나 무책임하고 사기에 가까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고발하는 것 자체는 칭찬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선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기치는 업자를 보도하는건 중요하지만, 그 보도자체가 거짓이어선 안되죠.
이번에 보도된 내용은 이겁니다.
동아닷컴에 기사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동아닷컴링크: 냉면육수, 알고보니 100% 화학조미료탕? '충격적'
이번 방송에서는 30분 넘는 시간동안 줄기차게 냉면에 '쇠고기맛 조미료'가 들어갔다는 얘기를 반복합니다.
몰래카메라를 활용하기도 하고, 취재원에게 돈을 줘가면서 함정 취재를 하기도 합니다. 취재원은 냉면 육수의 비결을 팔겠다고 나온 청년으로, 제작진은 청년에게 50만원을 주고 육수 비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짓말을 동원하고 업자를 찾아가 돈 내고 육수비결을 배우는 과정까지 들어있습니다.
비결은 역시 '쇠고기맛 조미료'라고 합니다. 동아일보는 이 조미료를 '100% 화학조미료'라고도 합니다.
사실 저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냉면 육수에 조미료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먹어왔습니다. 하지만 100% 화학조미료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 보도를 들으니 무척 꺼림칙합니다.
◆ '다시다'가 화학조미료?
그런데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이 냉면이 몸에 해롭다는 식으로 보도하는겁니다.
"설마 조미료를 가득 넣을리가" -> "살펴보니 역시 조미료가 가득" ->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이 가득 들어있는"... 이라는 식으로 반복을 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놓습니다.
그러면 정말 이 냉면이 몸에 해로울까.
그걸 밝히기 위해선 여기서 '쇠고기맛 조미료', '100% 화학조미료탕'이라고 언급한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겁니다.
여기 사용되는 조미료는 다름 아니라 바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쇠고기 다시다입니다.
문제는 이 '다시다'는 '화학조미료'가 아니라 실제 '쇠고기 육수'를 가루화 한 분말이라는겁니다.
보도에서는 쇠고기 '맛' 조미료라고 자꾸만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이 제품명은 '쇠고기 다시다'이지, 결코 쇠고기 '맛' 다시다가 아닙니다.
법적으로 쇠고기가 실제 들어간 제품이어야 쇠고기맛이 아니라 쇠고기OOO 라는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성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쇠고기 다시다의 성분에는 소금이 대부분이고, 여기 쇠고기, 사골국물, 마늘,양파, 후추가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화학물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MSG 등이 들어갑니다. 향미 증진제가 화학물질인지 여부와 몸에 해로운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어 내일 다시 적겠습니다. 어쨌건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천연 물질입니다. 반이 훌쩍 넘는게 천연재료인데 어찌 이걸 화학조미료라고 할 수 있나요. (이 내용은 'MSG가 아닌 향미증진제를 넣었다'고 잘못 썼던것을 독자분께서 메일로 지적해주셔서 추후에 수정한 내용입니다)
다시다 원재료 (비율순, 붉은색은 화학물질)
정제염, 쇠고기 양념분말(중국산)23.3% [소맥전분(밀),정제염,양파분,마늘분,사골엑기스분말(사골:호주산),효소분해쇠고기분말3.4%(쇠고기87.6%,호주산)], L-글루타민산나트륨(향미증진), 정백당, 농축간장[탈지대두(인도산),콘글루텐], 포도당, 말토덱스트린, 우지, 한우추출우지, 아미노산간장, 향미증진제, 농축미트향, 세이버리스튜, 고기국물맛분말(우유), 흑후추, 조미후추분말, 마늘향, 마늘양파혼합분, 구운양파향, 영양강화제, 구연산
다시다를 보면 실상 고기 국물을 내서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만약 식당에서도 냉면 육수를 건조시켰다가 다시 풀어서 쓰는 거였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문제삼을까요?
아마 취재하는 당사자들도 '다시다'가 실상은 몸에 전혀 유해하지 않고, 쇠고기 국물을 분말화 한 것이라는 것을 취재중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품이 가루형태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집에서 냉면육수는 어떻게 만드나
일부 몰지각한 냉면 업자들이 국민들을 속이며 이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는 식의 보도였는데요.
그러면 일반인들은 집에서 냉면을 어떻게 만들까?
위 질문과 답변은 2007년도에 올라온 답변입니다. '다시다를 물에 풀어서 식초를 타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냉면육수를 만들어 먹어라'라는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검색해보시며 아시겠지만 네이버 지식인이나 다음이나 심지어는 요리사이트에도 대부분 냉면 육수 만드는 방법에 다시다를 물에 풀어서 만들라고 돼 있습니다.
'어 이상하다. 집에서 이런 레시피를 사용 하라고? 조미료를 가득 넣어서?'
원래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많고 더구나 이를 위한 '냉면 다시다'라는 제품도 나와있습니다. 몸에 해로운 물질이 아니니 가정에서 누구나 손쉽게 저런 식의 요리를 하고 있고, 다시다를 만드는 CJ 또한 그것을 권장하고 있다는 셈이죠.
마트에 가보면 'OOO 동치미 물냉면'이라거나 'OOO 평양냉면'이라는 식의 포장 냉면이 인기리에 판매됩니다. 이것 또한 성분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쇠고기 육수, 소금, 마늘, 후추, 식초 등을 넣고 만드는 것으로 성분표에 나와있지만, 다시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제품을 '냉면베이스'라는 식으로 숨겨놓기도 합니다.
◆ 이번 보도, 무엇이 잘못인가
물론 식당 주인들이 사골 대신 가루 쇠고기 국물을 이용했다는건 잘못입니다. 소비자들에게는 마치 사골 국물로 제대로 냉면 국물을 우려내는 것처럼 해놓고, 정작 저렴한 조미료가루를 이용했다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다시다를 이용해 냉면 국물을 만드는 것 자체는 전혀 불법도 아니고, 전혀 꺼림칙한 내용도 아닌데 몰래카메라를 이용함으로써 마치 범죄현장을 다루는 것 처럼 보도 된 건 잘못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탐사보도는 선정적으로 '너희 속고 있는거 우리가 알려줬어'식으로 보도됐지만, 정작 다들 알고 있는것을 뒷북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정작 국민의 건강과는 큰 관계가 없는 내용을 불편하게만 만들어 버린 듯 합니다.
물론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그보다 중요한 '대장균이 얼마나 들어있는가', '냉면집의 냉동기는 왜 세척이 안되는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이런 부분은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장균이 들어있다거나 하는 내용으로는 시청자를 잡아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엉뚱하게 싸구려 냉면집의 냉면 육수 주성분인 다시다를 끌고와서 두들겨버린 느낌입니다.
좋은 보도이긴 한데,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여줘야 옳는 보도자세지, 그저 시청자에게 충격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호도한다거나 의도된 연출을 하는건 탐사보도인이 해야 할 자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채널A, 그리고 이영돈PD님의 책임있고 공정한 보도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