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컨의 주장은 에어백 센서가 잘못된 위치에 장착돼 있었기 때문에 에어백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더 좋은 위치에 센서를 장착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던컨의 말처럼 센서 위치 선정이 잘못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혹시 차가 전복된 후의 사고이니 전자적 오류가 먼저인지, 아니면 당시 기술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에어백을 전개 시킬 수 없었는지 여부를 밝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버지니아주 플라스키 법원에서 2010년에 첫 소송이 있었지만, 이때는 결론을 내지 못한 반면, 지난달 17일부터 시작된 2차 소송에서 던컨은 배심원들의 유죄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설계한 에어백 센서의 위치가 잘못됐다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점은 판결 금액입니다. 무려 159억원이라고 하니 소비자 권익이 진정으로 보호되고 있는 것 같아 어떤 면으로는 부럽기까지 합니다. 현대차의 항소가 끝나 금액이 확정되면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것이 불보듯 뻔합니다. 현대차는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사이드 에어백은 완전무결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이같은 판결이 나올 수 있을까. 현대차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절대로 그럴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우리는 '전보적 손해배상(손해액보상)' 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어떤 피해를 입든 손해 금액을 산정해 이에 대해서만 배상하도록 돼 있습니다. 따라서 이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명백히 제조사의 잘못이더라도 피해자는 치료비 등과 함께 현재의 수입에 근거해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기간에 대한 보상만 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선 제조사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배상 금액은 아무리 많아도 수천만원~수억원을 넘지 않습니다. 연간 10조 넘는 수익을 올리는 현대차 입장에서 수천만원은 아무 의미 없으니 큰 부담 없이 납부하겠죠. 만일 배상 비용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 비용이 훨씬 크다면, 굳이 해당 부위를 고치거나 리콜하지 않고 그대로 판매할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이같은 도덕적 해이 문제를 일찌기 경험한 미국이나 영미법권 국가에서는 기업들이 벌을 받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같은 죄라도 돈이 많은 기업일수록 더 많은 피해 금액을 책정해 개인 배상 금액을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같은 제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부자와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우리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인력을 빼가 손해를 끼치는 경우 피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는 방안을 추진중이지만, 실효성 여부를 놓고는 옥신각신 하는 상태입니다. 징벌적 배상에는 긍정적인 입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급부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이를 시행했을 때 피해자가 손해액보다 더 큰 이익을 얻게 되므로 미국처럼 소송을 대량 양산하게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대기업이 잘못하는 경우 정부가 이를 제재할 형사법적 장치들이 확고히 있으니 대기업이 중소기업 혹은 개인에게 배상해야 하는, 말하자면 형사법 민사법의 경계가 모호한 '징벌적 배상 제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개인과 대기업이 맞서는 상황에선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편에 서서 대기업을 견제해 준다는겁니다. 물론 천사같은 정부와 천사같은 기업만 있다면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수백억의 배상금까지는 바라지 않겠지만 전 그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 운전자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편이 있어주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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