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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흥미꺼리/취재 뒷담화

제네시스의 '거북선 기능'?…직접 실험 해보니

현대차가 내놓은 해명이 영 미심쩍었습니다. 뭐든 아리송하면 직접 해봐야 한다는게 평소의 지론. 그래서 직접 실험을 해봤습니다. 역시나 결과는 반전. 


무슨 얘기냐구요? 바로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제네시스 거북선 기능' 얘깁니다.


지난달 16일에 다음 아고라 즐보드에 한 네티즌이 제네시스 그릴에서 수증기가 솟아 나오더라며 사진 3장을 게재했습니다.


과연 영업소 앞에 서있는 제네시스의 그릴에서 김이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게시자는 '영업사원이 차를 선팅하고 가져온 것 같은데 차가 서자 마자 그릴에서 김이 나왔다'는 내용의 글도 적었습니다.

수증기가 나오는 제네시스. 세차해서 그렇다던데?



보는 순간 '음 이건 그냥 세차하느라 물뿌린게 뜨거운 라디에이터에서 증발하는 것 같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잊고 있었지요.


그런데 얼마 후 이것이 이곳저곳 커뮤니티로 실어날라지고 점점 일이 커졌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저 단순한 헤프닝이었지만 어찌보면 '신차인데 불구하고 초기품질이 불량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심지어 전기 밥솥의 이름을 붙여 '제네쿠쿠'라고 하거나 '거북선 기능이 옵션으로 내장됐다'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현대차 홍보실에선 "추운날 차를 운행한 후 세차하면 원래 그렇게 된다"고 해명 했습니다. 


해당 영업소에서도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한 직원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세차하고 온건데 그 친구가 괜히 그렇게 올려가지고..."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이어 "(그건에 대해서는)홍보실을 통해 얘기하고 개별적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어 장문의 분석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겨울에 세차하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거 뭔가 미심쩍었습니다. 막연히 세차 때문일 것 같기는 한데, 직접 보지 못해 어떤 상황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 직접 세차 해보니, '안그러네?'…품질불량 아니면 더 큰 문제


추운날 세차를 하면 그릴에서 김이 솟아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실험한 제네시스는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 3일 모터그래프가 직접 구입한 차입니다. 


3일 날씨는 최고 섭씨 영상 2.8도 최저 섭씨 영하 4.9도였다. 커뮤니티에 '제네쿠쿠' 글이 올라온 지난달 16일 기온도 최고 섭씨 3.6도, 최저 영하 4도로 오늘과 비슷했습니다. 


영업사원이 차를 몰고 어딘가 다녀왔다고 하니까. 우리도 같은 환경을 만들려면 차를 미리 좀 데워놔야겠다고 생각해서 차를 20여분간 공회전 및 주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인근 주유소 터널세차기를 통해 세차했습니다. 


어? 그런데 김이 솟아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10여분을 더 주행하고 10여분을 공회전 시켰습니다. 그 과정을 계속 녹화했지만 단 한 차례도 그릴에서 수증기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라디에이터가 뜨거워지면 이내 팬이 돌면서 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수증기가 솟구칠 정도로 데워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실제로 해보면 어지간히 달려도 물이 증발하지 않는다.



다른 브랜드의 자동차 정비사는 "냉각수 온도가 100도 가까이 올라야만 저 정도로 김이 날 수 있다"면서 "만약 라디에이터가 정상이라면 세차 후 차를 가혹하게 주행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현대차 측 주장대로 초기 품질문제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네요. 소비자 인도를 앞둔 차인데도 가혹하게 주행했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설마 영업사원이 10km도 채 못달린 신차를 마구 밟아버린건 아니겠지요? 


그리고 번호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차는 13일 울산에서 출고된 차량으로 유리 틴팅까지 마친 점을 감안하면  곧 소비자에게 인도될 차량이었던 겁니다. 


지금 현대차를 보면 품질개선 뿐 아니라 영업, 인수, AS로 이어지는 고객의 접점에서 더욱 각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네시스는 '럭셔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고급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는 턱없이 못미칩니다. 


이번 사건만 해도 마구 달려서 그런건지 품질문제가 생긴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영업사원만 조금만 대응을 잘했으면 이렇게 이슈가 크게 터지지는 않았을겁니다.


우선 영업사원이 신차를 몰고 나가서 썬팅을 해오거나 세차를 해오고 인도 한가운데서 차를 인수하는 모습부터가 수입차 브랜드에선 낯선 풍경입니다. 대부분 수입 브랜드들은 전시장에 작게나마 인수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소비자가 팬이 되는지 안티로 돌아서는지는 바로 이곳 영업소에서부터 결정됩니다. 요즘 현대차 제품은 분명 좋아진 것 같은데 구매, 인수, 서비스, 고객관리 등에서 아직 동네 구멍가게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참 답답합니다.